[IBK 기업은행 집중탐구] ② 영화속 장면 연상케하는 부당 대출 수법들
[땅집고] “쪼개기 대출, 허위 대출, 허위증빙서류, 전직 직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서 발생했던 총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건은 영화속 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갖 부패 수법들이 총동원됐다. 퇴직 직원이 무려 7년간 기업은행 현직 직원 28명과 공모해서 천문학적인 부당대출이 이뤄졌다. 국책은행이 ‘비리백화점’이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차기 행장 인선을 앞둔 IBK기업은행이 전·현직 직원에 의해 900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부당대출이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심지어 은행 차원에서 다수 직원이 관련 기록을 삭제하는 등 사태를 축소·은폐하려는 정황마저 나타나 충격은 더욱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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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 사이에서는 “은행을 어떻게 믿냐”는 비판과 더불어 금융권의 떨어진 신뢰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논란에 김성태 행장의 연임에도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IBK기업은행에서 발생한 총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건에 대해 “단순한 일탈 수준이 아닌 조직 내부의 구조적 허점”이라고 판단했다. 사건의 중심에는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이 있다.
A씨는 14년간 재직한 후 퇴직한 전직원이다. 그는 차명으로 부동산 중개업소와 법무사 사무소를 운영하며, 2017년부터 7년간 기업은행 현직 직원 28명과 공모하거나 도움을 받아 허위 서류를 꾸며 총 785억원의 부당대출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A씨의 배우자이자 기업은행 현직 심사역, 그리고 지점장과 심사역 등 핵심 실무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었다. 부당대출 관련자 8명은 A씨로부터 15억7000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수수하고, 또 다수 임직원도 국내외 골프 접대를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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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기 대출·허위 자금계획…7년간 ‘허위 대출 공모’
대표적인 사례로는 A씨가 2018년부터 3개월간 ‘쪼개기 대출’로 토지를 자기 자금 없이 취득할 수 있도록 64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은 건이 있다. 당시 그의 아내는 허위 증빙 서류를 작성했고, 이를 승인한 지점장도 부실 심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0년에는 지식산업센터 공사비 명목으로 59억원의 대출을 허위로 승인한 정황도 적발됐다.
이러한 정황은 단순한 내부자 비리 수준을 넘어, 기업은행 여신 시스템이 수년간 구조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금융당국은 기업은행이 해당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하려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금감원은 이 사례를 포함해 지난달 말 기준으로 기업은행에서 적발한 부당대출 882억원 중 535억원의 대출 잔액이 남아 있으며, 이 가운데 20%에 가까운 95억원이 부실화된 상태라고 공표했다.
금감원은 사건 과정에서 기업은행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제보를 받고 9~10월 중 자체조사를 통해 금융사고를 인지했으나 금감원에는 12월 말이 돼서야 보고가 이뤄졌고, 이마저도 일부 내역을 누락하는 등 축소·지연 보고했다는 것이다. 보고 전인 11월 중순에는 ‘여신 관련 검사방안 등 검토 결과’라는 별도 문건을 마련해 사고 은폐·축소까지 시도했다고도 봤다.
이후 기업은행은 A씨의 배우자 등 부당대출에 연루된 임직원 일부를 현업에서 배제하고 대기발령 조치에 나섰으나, 사태 확산은 계속되고 있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김성태 행장의 연임도 불투명해졌다. 김 행장은 2023년 취임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으나, 사건 이후 김 행장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부실채권 리스크나 예대마진 악화보다 더 본질적인 조직 리스크”라며, “차기 행장은 내부 신뢰를 회복하고 통제시스템을 원점에서 재설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 외에도 빗썸 등 일부 금융기관에서도 내부통제 미흡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빗썸은 전·현직 임원 4명에게 임차보증금 116억원 규모의 고가 사택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일부 임원이 자신의 거래를 승인하거나 사적 목적의 자금으로 활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감원에 적발됐다. /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