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표 배드뱅크, 내년까지 장기 연체 부실채권16.4조 소각한다
“상환자 역차별·금융사만 좋은 일” 등 형평성 논란도 제기
[땅집고] 나랏돈으로 1조원대가 넘는 부실채권(NPL)을 소각 처리한 이른바 ‘이재명표 배드뱅크’ 논란이 연일 거세다. 배드뱅크는 취약계층의 경제활동 복귀를 돕는 장기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으로, 서민 또는 영세자영업자들이 7년 이상 장기 연체한 5000만원 이하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골자다.
금융당국은 이번 소각이 취약계층의 경제활동 복귀를 돕는 과정이라며 배드뱅크 사업의 첫 성과라고 강조했으나, 금융권 안팎으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상환자들은 바보로 만드는 일이라면서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졌다. 논란이 지속하자 금융위는 ‘도덕적 해이’ 심사 기준을 강화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이재명 공약’ 새도약기금, 캠코·행복기금 통해 취약계층 채무 1조 탕감
지난 8일 금융위원회는 부산국제금융센터 캠코마루에서 배드뱅크인 ‘새도약기금’ 장기 연체채권 소각식을 열고, 장기 연체자 6만6916명이 보유한 1조1305억원 규모의 채권을 전액 소각했다. 새도약기금이 지난 10월 캠코와 국민행복기금으로부터 매입한 장기 연체채권 5조4000억원(34만 명) 중 기초생활수급자·중증장애인·보훈대상자가 보유한 채무다.
취약계층 연체채권은 보건복지부 등의 상환능력 심사가 이미 이뤄지는 점을 감안해 별도 심사 없이 즉시 소각이 가능하다. 이날 소각분은 해당 계획의 1차 실행분으로, 정부는 새도약기금을 활용해 내년까지 16조4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입·정리한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금융위 소관 2차 추가경정예산 총 3개 사업 1조1000억원을 의결, 확정지었다. 전체 예산 중 4000억원은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거나 상환 부담을 완화하는 배드뱅크에 배정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상환능력 제고 기회를 상실한 소상공인·취약계층을 위해 마련한 특단의 대책으로 배드뱅크 운영을 강조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배드뱅크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부터 불법 비상계엄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고 계신 소상공인, 자영업자, 취약계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 사업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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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자·코인부자도 빚 탕감?...“갚은 나만 호구” 성실상환자 박탈감 확산
정책 시행 이후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성실히 대출금을 상환해 온 일부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새도약기금 장기 연채 소각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빚 갚는 사람만 바보, 호구”라는 식의 글이 다수 올라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감사원은 지난 15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서, 새출발기금으로 원금 감면을 받은 3만2703명 중 1944명은 변제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총 840억 원을 부당 감면받았다고 밝혔다.
월 소득이 8084만원으로 변제 능력이 충분한데도 채무 2억원을 감면받거나 4억3000만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도 1억2000만원의 빚을 탕감받은 경우 등이 사례로 확인됐다. 채무를 감면해 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새출발기금으로 채무 원금을 3000만원 넘게 감면받은 1만7533명 가운데 269명은 가상 자산을 1000만원어치 넘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람들이 감면받은 채무 원금은 225억원에 달했다. 새출발기금으로 채무를 감면받기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를 해준 사람도 있었다.
채무 원금을 3000만원 넘게 감면받은 1만7533명 가운데 77명은 새출발기금 신청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를 해놓고 새출발기금으로 원금 66억원을 감면받았다.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1만7533명 가운데 39명은 비상장 주식을 1000만원 이상 갖고 있었는데도 채무 34억원을 감면받았다.
감사원 적발 이후 금융위는 16일 브리핑을 통해 ’도덕적 해이’ 심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사업자와 연계해 가상자산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도 협의하기로 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향후 소득·자산 수준에 따라 원금감면 수준을 차등화할 것”이라며 “구간별로 원금 감면율을 어떻게 정할지는 운영 사례와 차주들의 상황 등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실상환자 인센티브 있어야…”혈세로 금융사만 배불린다” 지적도
잡음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새도약기금은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출자와 정부 재정이 일부 포함된 구조로, 실질적 재정 부담이 국민 세금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혈세’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면 도덕적 해이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사만 배불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캠코가 부실채권을 매입하면 은행과 카드사 등 금융사는 고정이하여신 비율을 낮출 수 있고,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