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바비큐·침구까지 비용 폭탄
뒤늦게 ‘다크패턴’ 규제, 총액 표시 의무화
[땅집고] 서울에 사는 윤경호(44·가명)씨는 지난 주말 가족과 강원도로 떠난 휴가에서 말로만 듣던 ‘펜션 바가지’의 실체를 경험했다. 예약할 때까지만 해도 1박 30만원짜리 숙소였지만, 입실부터 퇴실까지 추가 비용이 겹겹이 붙기 시작했다. 수영장 온수 사용료가 5만원, 바비큐 이용비는 2인 기준 2만원이 따로 붙었고, 인원 추가 시 5000원이 더해졌다. 아이 침구를 놓겠다고 하니 2만원이 추가됐다. 이렇게 추가 비용이 더 붙으면서 결제 금액은 순식간에 40만원을 넘었다. 윤씨는 “호텔이 비싸 펜션을 골랐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기분이다”며 “바가지 폭리에 속은 것 같아 다시는 펜션을 가지 않을 생각이다”고 했다.
불편은 비용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후 3시에 입실해 이튿날 오전 11시면 나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인데, 퇴실 전 설거지와 청소까지 꼼꼼하게 요구받자 황당함이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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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실 늦고 퇴근 빠른데 청소도? “청소 안 하면 3.7만원 추가요금”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바가지 요금과 함께 투숙객에게 설거지·분리수거·침구 정리 등을 요구하는 펜션 문화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업체가 퇴실 청소를 면제해주겠다며 ‘청소 옵션’을 유료로 판매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이 붙었다. 펜션에 등장한 새로운 옵션으로 ‘클리닝 프리(Cleaning Free)’라는 이름의 유료 서비스가 등장한 것. “여유로운 아침 공기 어떠세요? 청소 없이 퇴실하시면 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지만, 가격은 3만7000원이다. 누리꾼들은 “호텔 요금에 버금가게 받으면서 또 돈을 뜯어내려 한다”, “팁 문화 흉내내는 것 아니냐”, “입실은 늦고 퇴실은 빠른데 청소까지 해야 하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펜션 관련 잡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예약 단계에서는 기준 인원 기준으로 저렴한 금액을 내세운 뒤, 현장에선 인원 추가·바비큐·온수·침구 등 각종 명목으로 비용을 얹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100만 구독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도 지난 7월 ‘펜션에 가면’이라는 영상에서 이런 ‘상술’을 풍자했다. 코미디언 이수지가 펜션 주인으로 등장해 웰컴푸드라며 수박 반통에 3만5000원을 강매하거나, 수영장 수위를 몇 센티미터 높아지는지를 기준 삼아 추가비 5만~10만원을 요구하는 식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추가요금 문제를 비틀어 묘사한 콘텐츠였지만, 많은 시청자가 “웃프다”며 공감했다.
반면 업주들의 어려움을 항변하는 사례도 여럿 소개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용하지도 않는 물을 하루 종일 틀어놨다”, “수영장에서 자녀 배변을 처리하지 않았다” 등의 이른바 ‘펜션 진상’ 사례가 다수 공유되며 ‘기본적인 뒷정리는 에티켓’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상 법적으로 이용객에게 ‘퇴실 전 뒷정리’ 의무가 있는가 하는 논란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중위생관리법은 숙박업자에게 시설과 설비를 위생적으로 관리할 책임을 부여할 뿐, 이용객의 뒷정리 의무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민법상 임차인의 ‘원상회복 의무’가 적용돼 객실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오염시킨 경우에는 업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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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숙박업체 ‘총액 공개’ 규제 착수
이처럼 누적된 시시비비 속에서 업계 관행이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0월 24일부터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 지침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앞으로 숙박업체는 소비자가 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총 금액을 처음부터 온전히 명시해야 한다. 숙박비를 안내할 때 세금·봉사료·청소비 등 필수 비용을 모두 포함한 총액을 한 번에 표시해야 하며, 예약 과정에서 뒤늦게 금액을 얹는 ‘다크패턴(소비자 기만 상술)’은 규제 대상으로 명확히 분류됐다. 이는 지난 2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으로 다크패턴 규제가 도입된 이후 나온 후속 조치다.
한국소비자원은 “최종 결제 금액을 분명히 표시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세금이나 수수료가 빠진 금액을 할인된 가격으로 오인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공정위 역시 “소비자 오인 우려가 있는 가격 표시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ks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