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퇴한 가운데, 통일교가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을 만들기 위해 로비를 했다는 진술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일해저터널 사업은 부산에서 시작해 대한해협과 대마도를 건너 일본 규슈까지 200㎞를 해저 터널로 연결하는 사업으로, 문선명 총재가 1981년 언급 후 통일교 숙원사업이 됐다. 해저터널은 200조 이상이 드는 대역사인데다 항공기나 선박에 비해 경제성이 한참 떨어진다.
더군다나 한일 해저터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대륙침략용으로 추진했다.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1917년 '철도용 쓰시마 해저터널 건설'이라는 연구자료를 내놓았다. 당시 돈으로는 천문학적 금액인 8억엔의 사업비와 21년이라는 공사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1940년에는 일본 철도성이 '조선해협터널 및 대동아 종단철도 구상'을 통해 카라츠∼이키섬∼쓰시마∼부산, 카라츠∼이키섬∼대마도∼거제도∼마산 등 2가지 노선을 검토했다. ‘섬나라’ 일본에게 해저터널은 그야말로 대륙 진출을 위한 숙원이었다.
한일해저터널이 갑자기 통일교의 숙원사업이 된 것은 문선명 통일교 초대 총재가 ‘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을 밝히면서다. 문 총재가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각 분야 학자 720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전 세계로 통하는 자유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자. 이것이 건설된다면 아시아 3국은 문자 그대로 평화고속도로로 연결돼 일체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는 것. 이후 통일교는 1982년과 1986년 일본과 한국에서 한일해저터널연구회 등을 발족하고 대마도나 거제도 일대에서 시추 조사 등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사가현 가라쓰 해안가에는 민간단체가 한일해저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 공사 현장이 남겨져 있다. 문선명 총재가 한일해저터널 구상을 밝힌 이후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을 발족하고 1986년 나고야에서 제1차 조사를 위한 파일럿 터널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가라쓰에서 한일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 공사를 진행했다. 당시 바다 밑으로 547m까지 굴착, 지질조사가 병행됐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본격적인 해저터널 공사는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내부는 소형 트럭 한 대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고, 해저까지 연결되지도 못했다.
이 구상은 국내 정치인들의 공약으로도 연결됐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한일해저터널을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 12월 2일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는 ‘초광역 개발 추진전략’의 일환으로 한·중·일 해저터널 건설 구상을 밝혔다. 이어 2010년 9월 국토해양부는 한국교통연구원에 한일터널 타당성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일본 정부도 2003년 일본 자민당에서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100년 동안 이뤄야 할 3대 국가 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 사업비와 경제성 부족으로 인해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다.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