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정원오 이례적 칭찬
대형 프로젝트 VS 생활 밀착 행정
[땅집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유력 후보군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둘러싼 기류가 심상치 않다. 두 사람이 여야 진영을 넘어서 서로의 정책을 두고 예상 밖의 긍정 신호를 내비치면서 ‘네거티브’ 대신 ‘정책 경쟁’이 전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미래 비전을 놓고 맞붙을 경우, 최근 뉴욕시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조란 맘다니(34)의 실용주의 흐름이 한국 지방정치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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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권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부상한 정원오 구청장은 성동구청장만 세 번을 지낸 베테랑 기초단체장이다. 국회의원이나 유명 정치인이 아님에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선호도 상위권을 꾸준히 오르내리며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12년 동안 지역 현장에서 만들어온 ‘생활 행정’ 스타일이 강점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 구청장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정치보다 시민 생활을 바꾸는 정책에 집중하는 접근법”이라고 설명해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최근 “정원오 구청장은 뉴욕의 맘다니가 떠오른다”며 “서울판 ‘맘다니’라는 메시지와 실용주의 정책을 결합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언급했다. 아직은 정치 신인이지만 새로운 얼굴로서 상징성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누구보다 확고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 서울시장을 네 차례 지낸 데 이어 다섯 번째 임기를 노리는 상황에서, ‘서울시장은 오세훈’이라는 인지도가 강력한 무기다. 나경원 의원과 함께 보수 진영 대표 후보로 꼽히는 것도 여전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두 사람이 서로의 대표 정책을 두고 보여준 미묘한 ‘립서비스’다. 오 시장은 정원오 구청장이 한강버스 정책을 두고 “초기 시행착오보다 장기적 가능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식의 취지로 언급한 것을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정 구청장의 속내는 다르다. 한강버스가 운항 열흘 만에 중단된 상황을 두고 “교통 대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출퇴근용 실효성이 낮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다만 그는 이 사업이 ‘관광’이나 ‘심리적 휴식’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은 “오 시장이 지난해 비상계엄 때 계엄에 반대하고 나중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이 있던 것에 상당히 감사하다”고 했다.
반면, 두 사람의 정책 철학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오 시장은 신통기획, 한강버스, 서울링, 노들섬 개발처럼 도시를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전면에 내세워왔다. 특히 한강 르네상스는 오 시장의 대표 브랜드 사업이다. 그는 “세계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서울시장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도시경쟁력 강화”라고 강조한다.
반면 정 구청장은 성동구에서 성공버스(성동구 공공시설 무료 셔틀버스), 폭설대비용 열선 도로 확대 등 ‘생활밀착형 공공서비스’를 중심으로 지역 모델을 구축해왔다.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실효성에 집중한 접근 방식으로 ‘생활 정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두사람은 공통점도 있다. 정비사업에 대해 적극적이다. 오세훈 시장은 신통기획 등 규제완화를 통한 재개발 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확대를 주장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7년 도입한 서울특별시 장기전세주택 시프트(Shift)와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확대 정책은 전세계적으로 봐도 성공적인 주택정책이다.
정원오 구청장도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여당의 부동산 정책을 펼치지 않을 전망이다. 그는 정비사업 전반에 대해서도 “누가 시장이 되든 속도를 내야 한다”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주 1회 이상 열고, 500~1000세대 미만 구역은 자치구에 권한을 내려주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맞붙는다면, 이전 지방선거처럼 정치적·감정적 공방이 아니라 서울의 개발 철학과 도시의 미래를 놓고 본격적 정책 토론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성공버스’와 ‘한강버스’처럼 동시에 교통 문제를 다루지만 관점이 전혀 다른 사업들이 이미 비교의 축을 만들어놓고 있다.
맘다니의 뉴욕 시장 당선은 미국 정치의 지형 변화를 예고한다. 맘다니가 실용정책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킨 것처럼, 서울에서도 ‘인물 정치’가 아니라 ‘정책 정치’의 시험장이 열릴지 주목된다. 서울시 정치가 정쟁 중심에서 도시 비전 경쟁 중심으로 전환되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