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금 법은 너무나 세입자 위주라서 남의 집을 함부로 쓰더라도 임대인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세 놨다가 화병이 생겼어요. 세입자를 잘 만나야 건강하게 삽니다.”
“현재 제도로는 내 집에 전과자가 오는지, 신용불량자가 오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상호 간 분쟁 방지를 위해 ‘악성 임차인 방지법’ 입법이 절실합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소재 30평대 아파트에 반전세를 놨던 A씨. 이른바 RR(로열동·로열층) 매물이라 시세보다 비싸게 새 세입자를 구할 수 있으나, 정작 돈을 들여 집 수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세입자가 나간 후 마주한 집이 그야말로 곰팡이 천국이었던 것. 그는 가스 후드와 싱크대, 변기, 세면대 등이 공중화장실보다 더러운 상태였다고 전했다. A씨는 “집을 봤던 사람이 ‘너무 더러워서 신발 신고 들어가야 하나’ 망설였다는데, 세입자가 ‘관리는 집주인 책임’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처럼 세입자가 집을 엉망으로 썼다는 일화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임대인이 임차인을 가려서 받는 ‘임차인 면접제’를 도입하고 청원해 화제다. 월세 지급 능력과 거주 태도 등을 확인해 세입자를 가려 받자는 것이다.
◇ “면접 보고 세입자 뽑겠다” 제도 촉구
지난 1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는 ‘악성 임차인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한 임차인 면접제 도입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동의 기간은 다음 달 12일까지 30일간이다. 20일 오후 5시 기준, 1665명이 동의했다.
5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청원은 국회 상임위원회로 넘어간다. 상임위는 국회법에 따라 회부된 날로부터 최대 150일 안에 심사하고 그 결과를 국회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청원인은 ‘임차인 면접제’ 도입 제안 이유로 임차인의 신용도와 월세 지급 능력, 거주 태도 등을 확인해 임대차 계약 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월세 미납, 주택 훼손, 이웃 갈등 등)을 최소화하고, 집주인이 신뢰할 수 있는 세입자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임차인 면접제가 보편적이다”며 “상호 간 분쟁 방지 및 임대인 재산권 보호를 위해 '악성 임차인 방지법' 입법이 절실하다”고 했다.
◇ 알고 보면 한국 빼고 다 한다는 ‘세입자 면접제’
실제로 해외에서는 세입자 가려 받기가 보편적이다. 독일은 세를 얻으려면 안정적으로 임대료 지급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3개월치 임금과 여권 사본, 신용 등급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한다. 면접에서는 흡연, 애완동물 유무 등 사생활 관련 내용도 고지해야 한다.
미국은 연방주택관리국(HUD·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 규정에 따라 임대인이 임차인의 신용기록과 소득, 임차료 연체 기록, 범죄 기록을 보고 임차 여부를 결정한다. FHA는 피부색과 종교, 출신 국가 등으로 임차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나, 연체 기록 등은 세입자 거절 이유로 본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벌금이나 시정 조치 명령도 받는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 3단 입주 심사를 거친다. 관리 회사와 보증 회사, 집주인의 심사를 차례로 거친 뒤, 집주인의 승인을 받아야 입주가 가능하다.
◇ 의무만 주렁주렁 늘어난 임대인 “집 비워놓자” 응수할수도
‘임차인 면접제’가 임차인 권리 보호 목소리에 맞서는 임대인들의 ‘항명’이라는 시각도 있다. 임대차 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자는 취지이나, 이면에는 의무만 늘어난 임대인들의 불만이 짙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를 활용한 ‘임대인 정보조회 제도’를 시행해 계약 전부터 임차인이 임대인의 △HUG 전세금반환보증 가입 이력 △보증 제한 여부 △최근 3년간 대위변제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임차인 권리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공약에서 임대인이 책임지고 ‘전세사기 보증보험’을 가입하자고 했다. 최근에는 범여권에서 세입자의 주거를 최대 9년간 보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도 여당은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한 최우선변제금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국정기획위원회는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권 판단 기준 시점을 임대차 계약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나아가 최우선변제금 상향 및 지역 기준 조정 등도 입법화할 방침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임차인 중심의 전월세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제도를 손볼수록 임대인은 임대료 인상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최악의 경우에는 집주인이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내놓지 않아 전월세 시세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