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단독] 25년 만에 완공한 광양 아파트의 기구한 운명, 반값 통공매행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5.11.12 16:26

[땅집고] 전남 광양시에 입주한 지 4년 된 신축 아파트 ‘광양펠리시아’ 아파트 총 435가구가 한꺼번에 공매로 나와 눈길을 끈다. 전체 가구수의 87%가 공매로 넘어가면서 단지가 사실상 통공매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땅집고옥션(☞바로가기)에 따르면 전남 광양시 옥곡면 신금리 일대에 2022년 입주를 시작한 ‘광양펠리시아’ 아파트 총 497가구 중 435가구가 이달 개별 공매를 진행 중이다. 멀쩡한 신축 아파트가 무더기로 공매에 나온 이유가 뭘까.

[땅집고] 1997년 ‘옥곡그린아파트’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사업자 부도로 공사 재개와 중단을 27년여 동안 반복하며 유령아파트 낙인이 찍혔던 ‘광양펠리시아’ 아파트 옛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이 아파트 건설 사업은 역사가 깊다. 당초 1997년 광양그린이 ‘옥곡그린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지만 1998년 경기 침체로 부도나면서 같은해 6월 시공을 맡았던 장백건설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같은해 9월 장백건설도 부도를 맞는 바람에 사업권이 경매를 통해 다른 건설사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1999년 봉우종합건설과 일영종합건설, 2002년 고봉주식회사, 2006년 오유엔테크, 2009년 백두건설 등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 사업권을 손에 넣었던 모든 기업이 줄줄이 부도처리되면서 장기간 지역 흉물로 방치됐다.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던 ‘옥곡그린아파트’는 2021년 사업 정상화 기회를 맞았다. 주식회사엔에이치디가 시행을, 부산지역에 본사를 둔 남흥건설이 시공을 맡으면서 사업을 시작한지 약 25년만인 2022년 10월 준공에 성공한 것. 두 기업 모두 문태경 대표가 운영해 사실상 자체 시행 사업으로 진행한 셈이다. 단지명도 시공사인 남흥건설의 주거 브랜드를 따서 ‘광양펠리시아’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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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아파트에서 번듯한 신축 단지로 재탄생한 ‘광양펠리시아’는 지하 1층~지상 20층, 3개동, 총 497가구 규모로 건축됐다. 주택형은 전용 34㎡(약 14평)부터 45㎡(18평)까지 소형으로만 구성하는 점이 눈에 띈다. 사업 초기 인근 신금일반산업단지와 제철소 등 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수요를 고려해 소형 주택형 위주로 아파트를 꾸린 것이다.

주식회사엔에이치디와 남흥건설은 준공 전인 2021년쯤 ‘광양펠리시아’를 분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국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빠지기 시작한 가운데 광양시가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분양 상황이 좋지 않은 점이 발목을 잡았다.

[땅집고] 즉시 입주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전남 광양시 옥곡면 ‘광양펠리시아’ 아파트 홍보 전단. /분양 홈페이지


결국 사업자는 2023년 3월 ‘광양펠리시아’ 물량을 나눠 일부 주택은 일반분양하고, 나머지는 민간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입주자모집공고에 따르면 45㎡ 10층 이상 주택의 경우 보증금으로 1억2000만원에 책정하는 등이다. 그런데도 입주자가 잘 구해지지 않아 월세 형태로도 임대하는 방식도 시도하며 ‘즉시 입주 가능한 아파트’ 등으로 홍보하기도 했으나, 빈 집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광양펠리시아’ 미분양 물량을 털지 못한 남흥건설은 2024년 부도 처리됐다. 아파트를 담보로 우리자산신탁과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한 뒤 은행에서 440억원 정도를 대출받아 공사비로 썼으나 아파트를 팔지 못해 자금난에 빠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세입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흥건설이 일단 미분양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신탁사 동의 없이 전월세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뒤 보증금·월세를 받으면서다. 신탁 계약이 체결된 현장인 만큼 사전에 신탁사의 동의를 받은 뒤 임대 사업을 진행해야 했는데, 자금이 급했던 남흥건설이 이 과정을 생략하고 임대차계약을 맺었던 것. 이 때문에 전세 세입자의 경우 가구당 1억원 정도를 돌려주지 못할 위기에 처했고, 월세 세입자 역시 일부 재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KB부동산신탁이 기업구조조정(CR)리츠 형태로 ‘광양펠리시아’를 매입해 심폐소생하려고 시도했다. CR리츠란 미분양 주택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운영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회복하면 재분양해 사업비를 회수하는 형태다. 하지만 광양시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사업성이 낮다는 판단에 매수 의사가 철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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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자산신탁은 ‘광양펠리시아’ 총 497가구 중 집주인을 찾지 못한 435가구를 지난해 12월 공매에 넘겼다. 총 5회차로 구성하는 첫 공매에서 모든 가구가 유찰돼 올해 3월 재공매로 8차례 입찰을 진행했으나 여전히 집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8월과 10월에도 재공매 등록돼 현재 입찰자를 찾고 있으나 지금까지 낙찰된 사례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땅집고] 총 435가구가 통째로 공매에 나온 전남 광양시 옥곡면 ‘광양펠리시아’ 아파트 공매 공고에 적혀 있는 주의 사항. /온비드


현재 4번째 재공매 절차를 밟고 있는 ‘광양펠리시아’ 중 한 20층 주택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저입찰가가 감정가 수준인 1억5600만원이었다. 하지만 약 20차례 유찰되면서 오는 17일 진행하는 공매에선 가격이 6400만원으로 반토막난 상태다.

경공매 전문가들은 ‘광양펠리시아’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저렴해졌더라도 이 아파트를 선뜻 공매로 낙찰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광양시 도심과 멀어 입지가 좋은 편이 아닌데다, 1~2인 가구에나 적합한 소형 주택만 있어 수요를 끌어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미분양 폭탄’을 맞아 통공매로 넘어간 아파트로 낙인을 찍힌 탓에 지역 수요자들 인식이 좋지 않은 점도 입찰을 꺼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김기현 땅집고옥션 연구소장은 “공매 공고를 보면 과거 남흥건설이 신탁사 동의 없이 전월세 세입자를 받은 탓에 일부 주택에 전입신고가 되어있는데, 이 계약과 관련한 비용은 낙찰자가 전부 승계해서 해결해야 하는 조건이라고 적혀 있다”면서 “아파트를 싸게 낙찰받더라도 인도·명도 문제가 얽혀있는 물건이라 주인을 찾기 다소 힘들 것”이라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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