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천안역 1579가구 대단지, 1300여가구 3년째 유령아파트로 남은 이유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5.11.07 06:00

[땅집고] 수도권 전철 천안역 3번 출구를 빠져나와 걸어서 20여 분, 마을버스로 5분쯤 이동하면 대단지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원성동에 있는 총 1579가구 규모 ‘e편한세상 천안역’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천안에서 이른바 ‘유령 아파트’로 불린다. 2023년 6월부터 입주해 올해 3년차 단지인데 입주민이 200여명에 그쳐 밤이면 암흑천지로 변한다. 현지 주민들은 “멀쩡한 아파트가 몇 년째 텅 비어 있어 조금 무섭기도 하고 주거 환경에도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멀쩡하게 완공한 아파트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땅집고] 2023년 6월 입주를 시작한 충남 천안시 동남구 원성동 ‘e편한세상 천안역’ 아파트에 불 꺼진 집이 수두룩하다. /조합 제공


◇뉴스테이 사업성 급락…조합, 일반분양 방식 전환

당초 이 단지는 재건축 사업을 통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아파트)로 건축할 예정이었다. 당시 조합은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非) 수도권 입지인 점을 고려해 일반분양 대신 뉴스테이 방식으로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했던 것. 조합원 분양 물량인 260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아파트를 사업 참여자들이 8년 동안 임대한 뒤, 이 기간이 끝나면 일반분양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조합은 뉴스테이 사업을 위해 2017년 12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사업비 대출 보증을 받았다. 2018년 8월 DL그룹 산하 대림자산운용이 설립한 리츠인 ‘대림제5호천안원성동기업형임대위탁관리부동산투자’와 1319가구에 대한 선매각 계약도 맺었다. 매각금액은 2984억원. 이 리츠가 아파트를 사들여 뉴스테이로 운영한 뒤 추후 일반분양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시공은 DL이앤씨가 맡았다.

그런데 아파트 준공을 앞두고 문제가 터졌다. 착공 후 사업비 등이 늘어나면서 조합이 예상했던 것보다 사업성이 크게 낮아졌고, 조합원들이 수억원대 추가분담금을 내야 할 위기에 처한 것. 2017년 9월 뉴스테이 사업자를 선정할 때만 해도 관리처분계획 총회에서 승인된 비례율은 86.7%였으나 2023년 4월 아파트 임시사용승인 시점에는 45.7%로 거의 반토막났다. 비례율은 개발이익을 종전자산평가액으로 나눈 것으로 높을수록 조합원에게 유리하다.

결국 조합은 2023년 6월 총회를 열고 뉴스테이 사업을 취소하기로 결의했다. 임시사용승인을 받은 아파트를 리츠에 넘기는 대신 조합원분을 뺀 나머지를 일반분양해 수익성을 높이려는 취지였다. 2년여 지루한 협의 끝에 조합 측은 뉴스테이 사업 조건부 취소를 이끌어냈다.

◇조합-DL이앤씨 책임준공확약 두고 갈등…조합원 부담만 눈덩이

하지만 조합은 아직 아파트 일반분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은 선매각 계약을 맺었던 리츠에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주고 위약금도 줘야 한다. 여기에 HUG 보증으로 빌렸던 사업비도 갚아야 한다. 모두 합하면 약 3465억원이 필요하다.

[땅집고] 일반분양을 앞두고 금융권 대출 문제와 관련해 시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e편한세상 천안역’ 단지 항공 사진. /조합 제공


조합 측은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빚을 갚고 일반분양에 나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쳤다. 조합 측이 접촉한 금융기관 중 1곳이 시공사인 DL이앤씨의 ‘책임준공확약’을 대출 실행 조건으로 내걸은 것. 책임준공확약이란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자금 회수 가능성이 낮아지는 일을 막기 위해 시공사에게 건물 준공 책임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금융기관은 “‘e편한세상 천안역’이 거의 다 지어져 임시사용승인을 받고 조합원이 입주했다고 하지만 아직 소유권보존등기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등기가 안되면 담보가치가 없어 대출이 어려우니 시공사의 책임 준공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책임준공확약에 대한 조합과 DL이앤씨 간 입장이 정반대라는 것. 조합 측은 아직 아파트가 정식으로 준공승인을 받지 못한만큼 DL이앤씨가 책임준공확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DL이앤씨는 이미 조합과 계약했던 범위에서 아파트 공사는 다 마쳤다고 반박한다. DL이앤씨 측은 “조합과의 계약서 상 임시사용승인까지 책임준공으로 되어 있어 의무를 다했다”면서 “최종 사용승인까지 책임준공확약 의무는 없다”고 했다.

DL 이앤씨 측은 또 “해당 현장에서 공사비를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면서 “결국 조합 내부 갈등으로 발생한 문제이며, 건축물을 기한 내 완공했는데 잔여 공사비를 받지 못한 시공사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했다. 조합이 요구하는 책임준공확약의 경우, 추후 분양 실패로 대출금 상환이 어려지워지면 조합이 준공인가를 지연시켜 시공사에게 대위변제를 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합 측은 DL이앤씨가 HUG 사업비 대출 약정서에는 최종 준공승인까지 책임지겠다고 해놓고, 정작 도급공사계약서에는 임시사용승인까지만 책임진다는 사실상의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조합 관계자는 “정식 준공승인을 위해 일부 남아있는 공사가 있지만 대출이 실행돼 아파트 일반분양에 성공하면 DL이앤씨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받을 수 있어 전혀 무리가 없는 윈윈 구조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금융기관도 책임준공확약 문제만 해결되면 곧바로 PF대출을 실행하겠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합원 부담만 늘어나 답답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준공승인을 받지 못해 건물 가치가 하락하고 조합원 자산 손실도 커지고 있다”면서 “주택관리업체도 없어 조합이 모든 부담과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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