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한국은 투기세력들의 장난으로 주택가격이 세계 1위라고 할 정도로 비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투기세력을 때려 잡아 집값을 낮춰야 한다”
한국 좌파 지식인 등 규제만능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투기세력에 대해 극단적 조치를 시행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이들 입장이다. 이재명 정부도 규제만능주의에 빠져들었다. 이재명 정부는 중국도 감히 시행하지 못한 주택거래허가제를 실시하고 6억원이상 대출을 금지시켰다. 계엄령 하에서나 가능한 위헌적 초헌법적 정책이다. 이런 무지막지한 정책을 펴는 근거가 ‘한국=주택지옥’이라는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서울이 적어도 임차인에게는 주택지옥이 아니라 ‘임대 천국에 가깝다’는 놀라운 보고서도 있다. 독일은행 ‘도이체방크’가 발간한 ‘2005년 세계 물가 지도(Mapping the World's Prices)’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서울 도심 아파트 가격이 세계 주요 도시 중 4번째로 비싸다고 평가했다. 한국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규제만능주의자들은 집값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 보고서에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런던, 뉴욕, 파리, 샌프란시스코를 눌렀다.
그러나 이 보고서 원문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한국은 ‘서민 주택 천국’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방3개 아파트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조사했는데, 서울은 37위를 기록했다. 뉴욕 싱가포르 런던 샌프란시스코 홍콩 두바이가 10위권에 들었다. 서울은 도쿄(34위)보다 낮았다.
☞연남동 핫플 메이커가 알려주는 건물 가치 2배 올리는 법
청년과 서민들이 사용하는 방 1개 기준 아파트 임대료 순위는 48위로 더 낮았다. 1위인 뉴욕의 임대료가 4142달러인데 반해 한국은 969달러로 4분의 1에 불과했다.
도이체방크의 조사를 신봉, ‘한국이 주택지옥’이라고 외치던 규제만능주의자라면 ‘한국은 서민 주택 천국’이라고 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도이체방크의 조사는 서울의 PIR(소득대비 집값) 세계 1위라는 넘베오의 가짜 통계보다는 훨씬 신뢰성이 있다.
서울의 집값이 비싼데 비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이유는 뭘까.
한국의 주택시장에는 전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전세시장’이 존재한다. 한국의 집값이 치솟는다고 아우성이지만, 전세 시장의 존재로 인해 한국의 임대시장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이다. 서울아파트의 전세가 비율은 매매가의 53% 정도 된다. 강남구의 경우 40%까지 낮아진다. 더군다나 10억원 하는 아파트를 전세보증금 내고 빌려쓰다가 이사를 나가면서 보증금을 그대로 다 받아나간다. 월세로 허리가 휘는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임대천국이다. 전세의 존재는 월세임대료 상승도 억제한다. 월세 임대료와 경쟁관계이기 때문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임대수익 측면에서 월세보다 불리한 전세를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갭투자’ 때문이다. 전세를 낀 아파트 투자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시세차익을 겨냥한 것이다. 10억원에 전세가 5억원이면 나머지 5억은 미래의 시세 차익을 위한 투자이다.
그런데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서울과 경기도 12곳에 대해서 갭투자를 금지했다. 전세 낀 아파트 구입을 금지한 것이다. 갭투자 금지령으로 아파트 거래를 막아 집값을 잡을 수도 있다. 주택가격은 공급, 소득, 경제성장률, 금리, 대출 등에 의해 결정되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을 막고 거래를 제한하면 일시적으로 집값을 동결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더 큰 부작용이 임대시장에서 발생할 것이다. 전세를 사실상 퇴출시키면 결과적으로 임대시장의 월세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물론 전세는 투기를 부추기고 전세 사기극으로 초래하는 등 부작용도 많지만, 인위적으로 전세를 퇴출시키면 상상하지 못한 또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주택 매매가도 낮추고 임대가격도 동시에 낮출 수 있는 그런 요술 방망이 정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노무현과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증명이 끝났다.
☞불황에도 입소 대기만 수백명, 시니어 주거 성공은 운영력에서 갈립니다!
샤워실에서 물이 차갑다고 뜨거운 물을 급하게 틀면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온다, 이번에는 뜨겁다고 정반대로 찬물에 다시 틀면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샤워실의 바보’는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의 섣부른 경제 개입이 경기 변동을 더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 비유이다.
샤워실의 바보는 한국 주택정책에 딱 떨어지는 비유이다. 이재명 정부가 초헌법적 규제로 거래를 동결시켜 집값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거래 동결에 따른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매매시장보다 서민들에게 더 치명적인 것이 임대시장이다. 임대료 완충작용을 해온 전세 낀 아파트 거래의 금지는 전세대란과 월세 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제 임대시장에서 본격화될 충격파는 매매가 상승보다 서민들에게 훨씬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샤워실의 바보’가 입을 수 있는 가장 큰 피해는 감기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국민을 실험실의 쥐로 여기는듯한 초강력 주택 정책의 결말은 의도와 정반대로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