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기상도] “일감줄고 본드콜까지” 현대엔지니어링 사상 최악의 위기 맞아
[땅집고] 국내 시공능력평가 기준 6위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최근 직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유급휴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 관심이 뜨겁다. 창사 이래 초유의 결단이다.
올해 현대엔지니어링이 중대재해 사고를 내면서 이재명 정부 철퇴를 맞아 주택·인프라 수주를 중단한 가운데, 하반기 해외 플랜트 현장 2곳에서 총 2200억원대 본드콜(계약이행보증금 청구)을 당하는 겹악재가 발생하면서 회사가 위기를 맞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재해로 수주 셧다운…일감 반토막나자 유급휴가 결정
현대엔지니어링은 업역 특성에 따라 크게 플랜트사업본부와 건축사업본부로 나뉜다. 하지만 지난 15일 회사가 사업 중심 축이 되는 플랜트사업본부 직원 2000여명 중 절반인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유급휴가를 결정하면서 임직원이 술렁이는 분위기다. 오는 11월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1000명을 6개조로 나누고 한 달씩 순환 형태로 휴직할 것을 통보한 것. 휴직 기간 동안에는 직원들에게 급여의 70%를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유급휴가 조치를 내린 것은 일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공사 현장에서 작업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 사고가 줄줄이 발생하면서 회사가 주택·인프라 부문 수주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 정부가 건설업체가 낸 중대재해에 대해 전보다 무거운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지난 5월 ‘수주 셧다운’이란 강한 결단을 내리게 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2월 경기 안성시 세종~안성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로 4명이 숨지는 사고를 냈다. 이어 3월에는 경기 평택시 아파트 건설 현장과 충남 아산시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도 각각 1명씩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수주를 중단하자 현대엔지니어링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수주액이 3조9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7조3674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났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이번 유급 휴가에 대해 “플랜트사업본부의 인원 가동률을 고려한 한시적 유급 순환휴직”이라며 “해외 현장이 순차적으로 준공되고 있지만 신규 수주는 줄어들면서 본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것”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2200억대 본드콜 악재…실적 타격 이어질 듯
이런 가운데 하반기 들어 현대엔지니어링이 해외에서 시공을 맡은 현장에서 총 2200억원 규모 본드콜이 발생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본드콜이란 건설사가 도급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사업 발주처가 계약 이행 보증금을 몰수하는 조치를 말한다.
문제가 발생한 현장은 2017년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과 함께 1조300억원에 계약을 체결한 말레이시아 멜라카 2242MW 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다. 이 중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공 지분이 8673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본드콜 규모는 400억~500억원대다. 현재 현대엔지니어링 측이 지급 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현재 사건이 보류된 상태다. 만약 발주처와 협의가 결렬될 경우 현대엔지니어링 실적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폴란드 최대 규모 석유화학 플랜트 현장에서도 본드콜이 발생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2019년 1조5400억원에 수주한 폴리머리 폴리체 PDH/PP 플랜트다. 착공 후 코로나19 영향으로 공사가 지연돼 준공 기한인 2023년 8월을 맞추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 기간 연장 및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발주처와 의견이 갈리면서 1700억원에 달하는 본드콜을 요청받은 것이다.
본드콜 규모가 확정돼 현대엔지니어링 실적이 악화하는 경우 모기업인 현대건설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두 회사 합병설도 나오지만 아직 지배구조 개편 가닥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중대재해, 대규모 비용 인식 등 내외적 상황으로 인해 올해는 수주를 잠정 중단하고 내부 재정비를 거치는 시기로 계획했다”면서 “주택 인프라 외 새로운 사업부문을 발굴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기존에 수주해둔 사업별 프로세스를 면밀히 점검해 수익성을 더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