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퍼뜨린 엉터리 통계의 실체는 넘베오
[땅집고] “우리나라 국민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을 국제적 (기준과) 비교한 게 있는데 (높은 것으로) 1등”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다.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이 글로벌 1등이라는 통계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이런 가짜 뉴스를 정책 당국의 누군가가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부동산 규제론을 설파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말한 국민소득대비 부동산 가격은 PIR(Price-to-Income Ratio) 지수로, 주택가격을 연간 가구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소득에 비해 집값이 비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PIR은 집값의 상대 가격 비교이지만, 요즘 학계에서 잘 쓰지 않는다. 소득이 낮으면 절대적으로 집값이 비싸지 않아도 집값이 비싼 것으로 왜곡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 정부의 공식 통계(대한민국 전자정보 누리집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PIR 은 좀 다르다. 2023년 전국의 PIR은 6.3배, 수도권은 8.5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PIR을 세계 1위로 둔갑시킨 과대망상증 통계의 출처는 어디일까? 놀랍게도 가짜 뉴스의 출처가 한국은행일 가능성이 높다.
통신사 ‘뉴스1’은 2023년 9월 15일 ‘한국서 집 사려면 '26년치' 월급 모아야…이런 주요국은 없다’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했다. 이 기사의 출처는 당시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의 발언이었다. 그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에서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이 26배라는 것은 연간 평균 가계 소득을 26년 모아야 주택가격에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면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게 주택가격이 고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PIR이 26배라는 통계는 한국 정부와 학계의 보고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유령 통계’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세계적으로 우리보다 소득 대비 높은 집값을 자랑하는 나라는 10개국 뿐이며, 그중 우리가 주요국 또는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의 집값이 세계 1위라는 의미이다.
이 통계의 출처는 넘베오라는 사이트이다. 그런데 넘베오 사이트에 접속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엉터리 통계인줄 알 수 있다. 한국보다 PIR이 높은 나라는 △시리아(86.7배) △가나(78.6배) △스리랑카(40.8배) △중국(34.6배) △네팔(32.8배) △캄보디아(32.5배) △필리핀(30.1배) △나이지리아(28.2배) △에티오피아(26.4배) 등이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PIR이 높다. 집값이 높은 것이 아니라 소득이 적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넘베오 통계는 국가 평균 주택가격이 아니라 특정도시를 비교한 것이다. 통계 작성 방법도 학술적이지 않다. 넘베오는 전문 조사원들이 현장조사나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이트 이용자들이 관련 정보를 직접 입력해 통계가 생산된다. 네티즌들이 만드는 통계이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국가와 도시, 화폐 단위를 선택하고 식료품·외식비·교통비·공과금 등을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다. 이 같은 통계생산 방식은 이용자가 부정확한 정보를 입력할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객관적, 학술적 통계는 아니다. 그래서 넘베오 통계를 인용한 기사에 대해서 정부 관계자들이 수도 없이 통계 오류라는 해명을 한다.
지난 2월 4일 문화일보가 ‘세계서 가장 비싼 사과·바나나·감자 먹는 한국인’이라는 기사를 작성했는데, 기사의 근거가 된 통계가 넘베오(Numbeo)였다. 당시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는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넘베오 지표 생성의 기반이 되는 자료는 수집 기준도 불분명하고 상품의 종류, 품질 등 다양한 변수도 반영되지 않는다”면서 “넘베오 자료를 국가별 농산물 가격 비교 지표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이러한 내용을 기사화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므로 인용을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가장 객관적인 통계에 근거해서 정책을 펼쳐야 할 중앙은행이 정부 부처가 제발 활용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엉터리 통계를 퍼트리는데 앞장선 것이다. 한은의 신뢰성을 의존해 엉터리 통계를 대통령이 인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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