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문 닫은 대표 호텔
객실 점유율 ‘22%’ 추락
노후화·고물가에 매력 잃었다
[땅집고] “처음엔 호텔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았어요. 사이판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인데….”
지난해 미국령 사이판을 대표하는 5성급 호텔 하얏트 리젠시 사이판이 개관 43년 만에 결국 문을 닫았다. 사이판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15분쯤 떨어져 수십 년간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던 숙소였다. 300여 개 객실을 갖춘 이 호텔 폐업은 현지 관광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27년간 호텔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폐업 이후 가족과 함께 미국 본토로 떠났다.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관광 산업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사이판에 남은 친구들 대부분이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섬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자 호텔부터 상가, 해양레저업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한때 태교·가족 여행의 성지…지금은 텅 빈 거리
사이판은 한때 한국인의 대표적 휴양지였다. 2021년 이후 2년간 전체 여행객의 80%가 한국인이었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이른바 태교 여행, 가족 여행의 ‘성지’(聖地)로 불리며 다이빙 명소인 ‘그로토’ 해변 주차장이 관광객 차량으로 가득 차던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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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이판과 괌을 찾는 한국인 발길은 급격히 줄었다. 사이판 중심 거리인 가라판 일대 상가는 상당수 문을 닫았다. ‘비빔밥’, ‘불고기’라고 적힌 낡은 한글 현수막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로토 해변 일대에서 35년간 근무한 현지인 A씨는 “예전엔 하루에 한국인 200~300명이 찾던 곳이 이제는 20명도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국인 의존도가 높은 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투몬베이에 있는 웨스틴 리조트 괌은 관광객 감소로 올 6월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지상 21층 규모로 객실 424개를 보유하고 있다. 괌의 대표 쇼핑 거리가 가까워 속칭 ‘괌의 얼굴’로 불리던 곳이다.
북마리아나 제도호텔협회(HANMI)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11개 회원 호텔의 평균 객실 점유율은 22%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41%에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호텔 정상 운영에 필요한 점유율(70~80%)과는 거리가 멀다. 평균 객실 요금 역시 수요 감소로 17만원(122달러)에서 14만6000원(105달러)으로 떨어졌다.
◇고물가·환율·안전 이슈에 발길 줄었다
여행 업계 전문가들은 관광객 감소 원인으로 고물가와 안전 문제를 꼽는다. 사이판·괌은 미국령이라는 특성상 여행 경비가 달러로 책정된다. 환율 부담이 커지면서, 같은 예산으로 베트남 다낭·나트랑이나 태국 푸켓처럼 더 저렴한 휴양지를 선택하는 한국인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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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기후와 보안도 여행객 수요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023년 괌에서 발생한 60년 만의 초대형 태풍으로 한국인 3000여 명이 고립됐고, 2024년에는 한국인 피격 사건까지 일어났다. 사이판에 영사관조차 없는 현실은 여행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괌 영사관이 사이판을 관할한다.
관광 산업에만 의존해온 사이판과 괌은 시설 노후화와 관광 콘텐츠 부재라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에는 일본인, 그 이후에는 한국인,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일정 기간 수요가 이어졌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는 뒷전이었다.
시설은 제때 교체·보수되지 못해 낡아갔고,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도 더뎌지면서 매력은 점점 퇴색했다. 여기에 동남아 등 대체 휴양지가 다양해지면서 사이판과 괌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관광 산업 변화가 없다면 섬 경제 기반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며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oui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