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정부가 9.7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재건축·재개발 사업 다음으로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비아파트 매입임대 사업이다. 매입임대주택 사업은 정부나 지자체가 시장에서 이미 지어진 주택 혹은 완공을 앞둔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제도다. 서울에 부족한 주택 수요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급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정부의 공급대책에 계획된 물량이 향후 5년간 착공한 주택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실제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수요자들이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집은 매입임대주택뿐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과거 역대 정부가 매입임대 사업을 진행하면서 LH가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시장 가격보다 높은 금액에 매입했다는 비리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이미 실패한 제도란 인식이 업계에선 만연하다. 김헌동 전 SH사장은 과거 개인 페이스북에 “SH는 세금으로 원가 1억 남짓한 다가구 빌라 등을 3억대에 매입 약정하는 매입임대 축소로 세금 낭비를 막았다”며 매입임대주택 제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힌바 있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명분삼아 지역 건설업체나 브로커와 유착해 팔기 어려운 건물을 정부가 혈세로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해 토건족을 먹여살린다는 것이다. 비리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도 않았고, 이를 방지할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을 확대 추진하겠다는 것. 임대주택 공급 본연의 취지에 맞게 공급될 수 있을지 업계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그간 정부의 빌라 시장 규제로 비아파트 공급이 쪼그라든 상황이고, LH의 재정부담도 만만찮아 신축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신축 매입임대로 14만가구 착공…공실상가·업무시설 용도변경도 추진
지난 7일 정부는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 비아파트의 신축 매입을 통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14만가구를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2년간 우선적으로 7만가구를 집중 공급한다. 정부가 향후 5년간 착공하기로 한 계획 물량 135만가구의 10%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물량(23만4000가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
도심 공실상가와 업무시설 용도 변경을 통한 주거시설 공급, 단기간 신속한 공급이 가능한 모듈러 주택 공급도 확대한다고 밝혔다. 매입임대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는 건설 사업자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선 사업자에게 금융권의 저리대출을 지원하는 HUG 도심특약보증 한도를 총 사업비의 90%(기존 최대 85%)까지 상향하고 적용 기한도 연장한다. 이와함께 토지소유권 확보 시 토지선금 지급, 조기착공 시 매입대금 선지급 등으로 사업 자금을 지원한다.
매입임대 관련해선 예산도 충분히 반영해놨다. 지난 3일 국토교통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역대 최대급인 62조5000억원으로 편성하면서, 주택도시기금의 임대주택 지원 융자 사업 예산을 눈에 띄게 크게 늘렸다. 출자 세부 내역에서 다가구 매입임대 출자 사업 예산은 2731억원에서 5조6382억원으로 내년에 20.6배나 확대했다.
◇ “끊임없이 제기되는 매입임대 비리 의혹…근본적 한계 개선해야”
하지만 업계에서는 매입임대사업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등 수요가 높은 인기 지역의 비아파트는 정부가 원하는 가격대와 규모의 건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신축 주택을 시장에서 매입해야 하는데, 이 공급 속도와 규모는 전적으로 민간 건설사업자에 달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간 끊임없이 정부와 민간 건설업자 사이의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참여연대는 LH가 위례신도시에 있는 오피스텔 336실을 호반건설로부터 고가에 매입해 공공전세로 공급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이 커지자 호반건설이 매입임대 약정을 철회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단락 됐다. 다만 LH가 당초 호실당 10억원, 보증금 5억원 수준에 주택을 사들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세보다 수억원 비싸게 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과거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사장은 땅집고와의 인터뷰에서 “(매입임대 약정을 하면)SH공사가 소형아파트를 직접 지으면 건설원가가 2억원에 불과한데, 이 금액의 두 배가 넘는 가격에 사줘야 한다”며 “빌라 사들이기 숫자 놀음하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대규모 전세사기 등으로 지난 몇 년간 정부가 빌라 시장을 옥죄면서 비아파트 인허가 자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어서 신축 물량 확보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토부가 발표한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비아파트 인허가 누적 물량은 3만7321가구로 2023년(5만1132가구) 대비 27% 감소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비아파트 누적 인허가 물량은 1만9121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 감소했다.
업계의 관계자는 “빌라 인허가 급감과 LH 재정 부담을 고려하면 실제 매입임대 공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없이는 매입임대 사업이 단기 처방에 그칠 위험이 크다”고 했다.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