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전통적으로 이사철 하면 날씨가 화창한 봄과 가을이 떠오른다. 일부 지역에선 학군 수요가 몰리는 겨울방학도 이사철로 꼽혔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사철이라는 개념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사 수요가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고 분산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전세금도 과거라면 비수기에 해당됐을 시기에 오히려 오르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지난 1987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38년간 서울지역 아파트 월별 전세금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2월에 1.73%로 가장 높았다. 이어 9월 1.5%, 3월 1.21%, 8월 0.83%, 1월 0.82%, 4월 0.55% 순이었다. 통계상으로는 봄, 가을, 겨울 방학이 이사철 특수가 뚜렷했던 셈이다. 반면 6월(-0.23%), 11월(-0.11%), 12월(-0.42%) 같은 비수기에는 전세금이 떨어졌다.
하지만 2015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10년간 전세금 변동률을 보면 이런 패턴은 크게 약해졌다. 우선 전세가격 월별 변동 폭이 과거보다 완만해졌다.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전세금이 더 오르는 ‘상저하고’ 현상도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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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 이사철도 옛말…결혼, 사계절로 분산되고 1인가구 증가해
구체적으로 가을 이사철인 9월(0.61%)에 비교적 많이 올랐지만, 비수기인 7월과 11월도 각각 0.42% 상승하며 3위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봄 이사철 성수기인 3월은 0.09% 상승에 불과했다. 특히 1월(-0.04%)과 2월(-0.01%)은 약보합세에 머물며 ‘겨울방학=이사 특수’라는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래량에서도 ‘계절성 붕괴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10년간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 거래량을 보면 12월이 1만 1441건으로 3월(1만1910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서울부동산정보광장). 반대로 9월(9502건)은 연중 가장 적었고 4월(9881건)이 그 뒤를 이었다. 비수기인 6·7·11월 거래량은 평균치(1만635건)에 육박하거나 넘어섰다. 전세가격뿐만 아니라 거래량에서도 계절성이 흐릿해지고 불규칙한 흐름을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포장이사의 보편화다. 예전처럼 며칠간 짐을 꾸리고 트럭을 빌려 이삿짐을 옮기던 시절과는 달리 포장이사 업체가 자리 잡으면서 굳이 주말이나 좋은 계절에 이사 날짜를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봄가을 이사철이라는 전통적인 인식도 자연스럽게 약해졌다.
둘째, 결혼 시기의 변화다. 아파트 전세금 수요의 큰 축인 혼인이 특정 계절에 몰리지 않고 사계절로 분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2월에 가장 많았고 이어 5월, 1월 순이었다. 반면 9월은 가장 적었다. 국토부·통계청의 2023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신혼부부의 73.9%가 아파트에 거주한다.
셋째, 1인 가구 증가도 한몫한다. 서울에서 1인 가구 비중이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가족 단위보다 이사에 자유로운 1인 가구는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이사하는 경향이 강하다.
넷째, 학령인구 감소로 학군 수요가 줄어든 것도 크다. 과거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겨울방학에 이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저출생·학령인구 감소로 이런 수요가 줄었다. 일부 지역, 특히 강남에서는 여전히 학군 수요가 남아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예전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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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출규제도 전세시장 냉각에 영향
마지막으로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도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가령 지난해 9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 직후에는 전세 거래량이 급감했다가 10월 들어 다시 회복했다. 대출 규제로 전체 시장이 냉각되자 전세 시장도 그대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요컨대 과거처럼 특정 시기에 이사가 몰리는 계절적 현상은 확연히 줄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봄가을 이사철=전세 시장 불안’을 직결시킨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진 시장 흐름과 괴리된 인식일 수 있다. 시대가 달라졌고 이사 풍속과 임대차 시장의 리듬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