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경기도 안양은 0원 냈는데, 우리는 120억원 내라고 합니다. 같은 생숙인데 왜 기준이 다른가요.”(경남 창원 ‘힐스테이트 창원 센트럴’ 계약자)
국토교통부가 시장 찬밥으로 전락한 생숙(생활형숙박시설) 퇴로를 열어준 가운데, 용도변경 기준이 사실상 ‘고무줄 잣대’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별 여건을 고려하라는 취지에서 세부 기준을 지자체에 일임한 결과, 형평성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일부 단지의 경우 공공기여 규모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여전히 용도변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우리는 120억 내는데, 저 동네는 공짜?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남 창원 성산구에 위치한 생숙 ‘힐스테이트 창원 센트럴’ 시행사 MIK개발과 입주예정자, 창원시는 공공기여 규모를 놓고 협상 중이다. 이 단지는 ‘창원 배후도시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주차와 공공기여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건축물 용도변경이 가능하다.
창원시 공공기여 기준은 15%로, 국토교통부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이 규정한 최고 수준이다. 해당 단지가 위치한 성산구 중심부에 워낙 오피스텔이 많아서다. 창원 배후도시 중심상업지역에는 이 단지를 제외하고 15개 단지, 6500여 호실이 있다. 창원시는 세부 지침을 통해 수년간 해당 지역 오피스텔 건립을 제한해왔다.
그럼에도 수분양자들의 불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힐스테이트 창원 센트럴’ 입주예정자 협의회 관계자는 “다른 지역은 한 푼도 안내고 용도변경을 했는데, 우리는 120억원을 내야 한다”며 “집값이나 도시 환경이 다른 걸 감안해도, 금액 차이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단지는 실거주가 막히면서 마피(마이너스프리미엄)이 붙었다. 전용면적 88㎡ 한 고층 매물은 분양가 7억3340만원에서 1억1000만원 내린 6억2340만원에 나와 있다.
◇ “우린 오피스텔도 없는데…” 발칵 뒤집어진 별내
현장에서는 수분양자와 시행사가 기부채납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지자체가 정한 기준이 턱 없이 높은 경우가 많아서다. 가구당 부담 금액이 많게는 수천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 외에 마땅한 대책이 없어 대부분 지자체에 고개를 숙인다. 국토부는 오는 10월부터 오피스텔 용도 변경 신청이나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은 생숙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진행한다. 기한 내에 용도변경을 마치지 못할 경우 불법 시설로 낙인이 찍히는 셈이다.
남양주 별내지구 ‘별내역 아이파크 스위트’ ‘힐스테이트 별내역’의 경우 오피스텔 과밀 현상이 없으나, 창원과 같은 공공기여율 15%를 적용받는다. 기부채납 금액이 300억원에 달한다. 별내는 인근 택지지구인 갈매(7%), 다산(13.5%)에 비해 오피스텔 비율(오피스텔 면적/지구 면적)이 1.43%으로 현저히 낮다.
별내의 경우 초역세권 입지라서 높은 공공기여율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단지는 별내역(경춘선·8호선) 반경 150m 거리에 있다. 2030년 수도권 최대 호재인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B가 개통하면 트리플역세권이 된다.
‘별내역아이파크스위트’ 거주자 이모씨는 “이행강제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면서도 “다른 지역 생숙이 공공기여 없이 용도변경한 것을 생각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했다.
두 단지는 2021년 준공해 소유권 등기가 이뤄진 지 오래다. 각 소유주가 수천만원을 부담해 공공기여를 진행해야 한다. 2014년 준공한 ‘해운대에이치스위트’ 등도 소유주가 비용을 감당했다.
별다른 기부채납 없이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꾼 사례가 있다는 것도 기부채납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경기 안양 ‘평촌센트럴푸르지오’ 등 일부 단지는 공공기여 없이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진행했다. 경기 안산 ‘힐스테이트시화호라군인테라스1차’는 2554가구 중 2493가구가 준공과 동시에 용도변경을 진행했는데, 추후 시행사가 기부채납을 하기로 했다.
◇ “용도변경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전국에서 공공기여 부담 주체와 금액 책정 기준이 제각각인 상황이 벌어지자, 인허가권자인 지자체는 수분양자의 원망을 사고 있다.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은 사실상 ‘욕받이’, ‘방패’가 됐다는 자조섞인 의견마저 보였다.
A지자체 관계자는 “정부 지침에 따라 공공기여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하면 ‘용도변경을 해주기 싫은 게 아니냐’ ‘타 지자체는 무상으로 해준다’는 날 선 의견이 돌아온다”며 “지자체 역량을 넓혀준다는 취지가 오히려 독이 됐다”고 했다.
B지자체 관계자 역시 “오피스텔을 하나 더 짓고, 없앤다고 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서도 “공공기여를 놓고 다툼이 발생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시설을 공급한 시행사 역시 난감한 처지다. 생숙의 불법 사용 금지 법안이 등장하기 이전에 분양한 사례가 적지 않다. 소급 적용 여파로 한 순간 ‘악덕 기업’이 됐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전에는 생숙을 주거 시설처럼 만들어 분양해도 불법이 아니었다”며 “생숙 금지에 이어 살리기 대책이 나오는 등 사실상 누더기 공급 대책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공공기여 부담 주체와 금액 책정 기준 등을 다각도로 고민해 더욱 세밀한 지침을 짰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국의 생숙은 총 18만5000실이다. 준공한 14만1000실 중 숙박업 신고를 한 생숙은 8만실, 용도 변경을 한 생숙은 1만8000실이다. 아직 용도 변경이나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은 생숙은 4만3000실에 달한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