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대출규제에도 꺾이지 않는 집값
내후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올해보다 81.2% 줄어
공급 병목 현상, 한국만의 문제 아냐
[땅집고] 6억원이상의 대출을 규제한 6·27대책으로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자 정부는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아무리 수요를 줄이는 강력한 규제대책을 발표해도 공급 자체가 급감, 수요 불균형에 의한 집값 상승까지는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은 내년 2만8355가구로 올해보다 39.3% 감소하고, 내후년에는 올해보다 81.2% 적은 8803가구에 불과하다. 이른바 ‘입주 절벽’의 상황에선 전세시장이 치솟으면서 매매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고 우려가 나온다.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 공급대책
하지만 정부가 지금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한다고 당장 효과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초반 규제정책에도 집값이 오르자 공급확대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12월에 발표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신도시는 현재 일부 분양만 이뤄졌다. 2021년 2월 발표된 7만 가구규모의 시흥 광명신도시는 2025년에 보상계획이 공고됐고 2029년에 분양, 2031년에 첫 입주가 시작된다. 공급대책의 발표가 실제 입주까지 이어지기까지는 보통 10년이 걸린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규제위주의 정책으로 공급을 감소시켰다며 규제완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2년 '8.16대책'을 통해 270만 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연평균 54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제시했다.
윤 정부는 ‘폭탄 수준’의 공급 확대를 공언했다. 당시 수도권에 향후 6년간 연평균 7만 호를 추가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첫해인 2022년 전년대비 34.4%감소했다. 2023년~2024년8월까지 인허가는 목표대비 45%, 분양은 20%에 그쳤다. 공급폭탄이 아니라 사상 최악의 주택공급 감소를 경험했다.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연간 주택공급 목표를 100만가구, 1000만가구라고 발표를 한다고 이를 믿고 기다릴 수요자들은 많지 않다. 이런 점을 의식, 현 정부에서도 “새로운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하지 않겠다”, “3기 신도시의 공사 속도를 늘리는 대책을 세우겠다”, “국유지를 활용해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공급 늘려 집값 잡는 게 불가능한 이유
이재명 정부가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아 6억원 이상 대출을 금지한 ‘6·27대책’을 발표했지만, 집값 상승세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규제와 공급이 병행되어야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며 파격적인 공급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윤덕 국토부장관도 청문회를 통해 “6·27대출규제는 부분적인 대책”이라면서 “물량에 대한 공급 대책이 나와야 완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확대 전략으로는 "큰 틀에선 3기 신도시를 속도감 있고 짜임새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도권 유휴부지도 핵심은 신뢰도라고 생각해 이런 틀을 바탕으로 수도권 내 양질의 주택을 공급할 것"이라고 했다.
공급으로 집값을 잡는다는 말은 장기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파트 공급은 인허가와 토목공사 분양 공사를 거치면 5년 정도 걸린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재명 정부에서 신규 아파트 한 동 짓기도 힘들다. 더군다나 신도시는 10년이상 걸리는 대역사이다. 공급대책을 통해 10년 후의 주택가격, 차기 아니 차차기 정권의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
◇’공급 폭탄’ 노태우 정부의 집값 폭락의 실체
공급 확대 정책과 관련해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노태우 정부의 신도시가 꼽힌다. 노태우 정부(1988년2월~1993년2월)는 주택 200만호 공급 정책을 발표했고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만 총 30만호(인허가 기준)를 쏟아부었다. 이는 당시 전체 주택 물량의 20%에 육박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5월 1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신도시 발표 이후 7개월 만에 시범단지가 분양됐고 2년 만인 1991년엔 첫 입주가 시작됐다. 정권의 명운을 건 돌관공사로 이룬 속도전이었다. 요즘의 건설인력의 고령화, 중대재해법, 주 52시간 근로제, 엄격한 환경영향-교통영향평가, 문화재 발굴 등을 감안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의 속도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신도시 대책발표는 오히려 집값 폭등세에 불을 붙였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1988년 18.47%, 1989년 18.82%이다. 신도시 대책 발표에도 1990년에는 37.62%의 대폭등이 발생했다. 공급대책의 발표는 오히려 집값 폭등세에 불을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3년간의 폭등장세가 마무리된 것은 1991년으로, 4.5%로 하락세로 돌아었다. 노태우 정부는 공급뿐만 아니라 강력한 규제정책도 병행했다. ‘토지공개념 3법’ 분양권 전매금지, 대출규제 등도 함께 도입했다. 노태우 정부의 공급정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정부는 김영삼정부였다. 노태우 정부가 뿌려 놓은 공급의 토대가 결실을 맺으면서 김영삼정부에서는 집값이 안정세를 유지했다.
◇공급병목은 세계적 현상
공급감소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전문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주택시장의 슈퍼사이클이 시작됐다는 글을 게재했다. 코로나로 인한 서플라이 체인 붕괴와 인구이동 격감,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원자재와 인건비 급등이 주택공급을 격감시켰다는 것이다.
향후 10년간은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코로나로 상당 기간 중단됐던 글로벌 관광과 인구 이동이 본격화되면서 주택 수요가 되살아 날 것으로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폭등을 막기 위한 고금리정책이 마무리됨에 따라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공급확대로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근본적으로 수요가 집중된 대도시는 전세계적으로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토지가 바닥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은 선진국 중에 유일하게 대량 주택공급이 가능한 신도시를 짓고 있다는 점이다.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