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올해 하반기 로또 분양 현장으로 예비청약자들 기대를 모았던 총 1000여가구 규모 서울 용산구 ‘아세아아파트’ 분양 일정이 내년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대사관 측이 직원 숙소로 사용할 예정인 이 아파트 저층 주택 150가구에 대해 ‘국제빌딩코드(IBC·International Building Code)’에 근거한 설계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만약 아세아 아파트가 올해 분양에 실패할 경우 이재명 대통령이 예고한 분양가상한제 손질 및 채권입찰제 도입 등 규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이 단지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수억원 차익을 얻을 수 있는 로또 분양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5일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 측은 국토교통부에 아세아아파트 재건축 아파트에 IBC를 준용한 설계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IBC란 미국 건축물 전반에 적용하는 국제통합건축기준을 말한다. 안전한 설계와 건설을 보장하기 위해 건물을 공공보건, 안전, 복지에 초점을 맞춰 짓도록 하는 포괄적 지침이다. 주거용 건물의 경우 스프링클러, 방화구획, 피난통로, 장애인 접근성 등에 대한 기준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 아세아아파트 부지는 대지면적 4만6524㎡(1만4073평) 규모다. 부영주택이 2014년 국방부로부터 3260억원 정도에 매입했다. 이후 부지가 2001년 특별계획구역으로 묶이면서 이 곳에 지을 수 있는 아파트 최고 층수가 기존 20층에서 33층으로 대폭 상향됐다. 부영이 아파트를 개발해 더 큰 차익을 거머쥘 수 있는 소위 ‘금싸라기 땅’이 된 셈이다.
현재 계획상 아세아아파트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36층, 10개동, 전용면적 84~137㎡ 총 997가구 규모 새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중 847가구는 일반분양하고, 나머지 저층부 150가구는 국토교통부와 주한미국대사관 간 양해각서 체결에 따라 기부채납한 뒤 미대사관 직원숙소로 활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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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아파트 개발은 2014년 부지 매입 이후 10년 넘게 첫 삽 조차 뜨지 못해 부영의 숙원사업으로 통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서울시 제 19차 건축위원회에서 건축심의를 통과하면서 올해 9월 일반분양에 돌입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모았다. 3.3(1평)당 분양가가 7000만원 이상으로 책정돼, 국민평형인 84㎡(34평) 기준 25억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이 나왔다. 그럼에도 인근 ‘센트럴파크’(2020년·1140가구) 30평대 주택인 92㎡가 올해 3월 32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청약 당첨시 7억원 이상 차익을 거둘 수 있는 로또 아파트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최근 미국 대사관 측에서 아세아아파트에 IBC를 적용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분양 일정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IBC 기준에 따른 설계 변경 절차를 밟으면서 사업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비도 덩달아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통상 면적을 기준으로 방화 구획하지만, IBC에선 용도가 다른 공간이 인접한 경우 구획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런 경우 벽·슬래브가 두꺼워지면서 더 많은 내화재를 사용해야 한다. 더불어 한국과 미국이 쓰는 건축 자재나 공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만약 부영주택이 미국 대사관 요청에 따라 공사를 진행하려면 해외 자재를 들여오거나 전혀 다른 공법을 소화해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는 등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만약 아세아아파트 분양이 내년으로 밀린다면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규제책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청약 수요자들이 기대했던 로또 분양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지난 6월 19일 열린 국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로또 분양’은 분양가 상한 제한으로 인해 실제 시세와 크게 차이가 발생해 주변 집값을 폭등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경우 수억원대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 수요를 부추기고, 이런 분위기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다고 본 것. 특히 이 대통령은 2022년 "주택 분양가격을 과중하게 올리지 못하게 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통해 너무 많이 남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이에 이재명 정부가 ‘로또 분양’을 막기 위해 현행 분양가상한제를 손질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만 분양가상한제를 전면 폐지하는 경우 정치적 잡음이 클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개발이익을 더 많이 환수하는 방식으로 수정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채권입찰제’ 도입도 이 대통령이 선택하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입찰제란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시세 차익이 예상되는 현장에서, 당첨자가 이 차익의 일부만큼을 국민주택채권 형태로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방식을 말한다. 과거 2006년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2007년 일산2지구 공공분양 등 현장에서 한시적으로 시행됐던 역사가 있다.
한편 미국 대사관은 아세아아파트 설계 변경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부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We do not comment on internal discussions)”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공을 맡은 부영주택 역시 언론을 통해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밝히기가 어렵고, 검토기간이 길어지면서 공사는 잠정 중단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