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광장 28번지, 주민 갈등으로 사업 지연 우려
38-1번지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2년만에 조합설립
[땅집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이름을 쓰는 서울 여의도의 두 아파트 단지 재건축 사업에 희비가 엇갈려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여의도 광장’. 50여 년 전 분양 당시부터 이 아파트는 하나의 단지로 묶여있다. 하지만 사실은 2개 단지다. 총 10개동 가운데 여의나루로를 사이에 두고 북쪽 28번지(3~10동)와 남쪽 38-1번지(1·2동)으로 나뉜다. 두 단지는 준공일이 달라 대지를 공유하지 않는다. 사실상 ‘한지붕 두가족’인 셈이다.
두 단지는 준공 30년이 도래한 2009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다. 여의도 중심 입지의 알짜 단지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끌었다. 먼저 앞서간 쪽은 28번지. 하지만 요즘 신탁사와 주민 갈등으로 연일 시끄럽다. 반면 출발이 늦었던 38-1번지는 최근 조용하게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 단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사업성 달라 갈등 폭발…2022년부터 각자 재건축 추진
재건축을 시작할 당시부터 두 단지는 서로 생각이 달라 갈등을 빚었다. 원인은 재건축 사업성이다. 준공한 28번지는 낮은 용적률(183%)과 넓은 대지면적으로 사업성이 좋았던 반면 38-1번지는 용적률(246%)이 높고, 대지 면적도 좁았다. 이렇다보니 28번지는 단지별 각자 재건축을, 38-1번지는 두 단지를 합친 통합 재건축을 각각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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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구역 간 갈등이 폭발한 때는 2019년 6월이다. 영등포구가 한국자산신탁을 광장28번지 재건축 사업시행자로 지정하자 38-1번지 소유주들이 반발했다. 통합재건축을 주장하며 영등포구청장을 상대로 재건축 사업시행자지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9월 1심에서는 38-1번지가 이겼지만 2심에서 뒤집혔다. 결국 2022년 9월 대법원은 28번지가 주장하는 분리 재건축을 확정했다.
이후 28번지는 2017년부터 추진했던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 사업 방향을 잡았다. 38-1번지는 뒤늦게 조합 방식으로 사업 추진에 나섰다.
◇내부 갈등 빚는 28번지…속도 내는 38-1번지
광장28번지는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올 5월엔 정비계획안 공람에 들어갔다. 기존 576가구를 최고 56층 5개동, 1391가구로 재건축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일부 소유주들이 고밀 개발, 대형 주택형 부족 등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나선 것.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 측은 긴급 협의 자리를 마련해 대형 주택형을 일부 늘리고 전체 가구수를 1314가구로 조정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반대파 소유주들은 지상 49층 이하, 총 1111가구를 대안으로 고집하고 있다. 결국 오는 26일 주민 대표격인 정비사업위원회와 한국자산신탁 측은 설명회를 개최해 주민 선호도를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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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 소유주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정사위원장 등을 ‘위계에 의한 입찰방해’로 최근 검찰에 고발했다. 신탁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절차를 밟았고, 그로 인해 분리 재건축과 관련된 법적 분쟁을 겪어 재건축 사업 지연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사위 측이 특정 신탁사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정상적 입찰을 방해한 것이 없는지 수사해 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38-1번지도 대법원 판결 이후 곧장 단독 재건축을 추진했다. 2023년 1월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작년 8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스타 건축가 유현준 대표가 설계를 맡아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현재 토지등소유자 동의율이 90%를 넘어 추진 동력을 얻었다. 구역 내 상가와 종교시설이 없는 것도 강점이다.
현재 정비사업 관리업체 등을 선정해 정비계획안 마련과 시공사 선정 절차를 준비 중이다. 38-1번지는 기존 지상 14층 168가구에서 최고 49층 3개동, 414가구로 재건축을 준비 중이다. 지난 6월 신속통합기획 자문을 받았고, 조합원 162명 중 122명의 동의를 받아 22일 정비계획안을 제출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추진 단계 자체는 28번지가 앞서 있지만, 38-1번지가 대법원 판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을 고려하면 속도는 훨씬 빠르다”며 “28번지가 사업성은 더 좋긴 하지만 소유주간 갈등을 잘 풀어내야 하는데, 38-1번지는 규모가 작은 것이 오히려 속도를 높이는 호재”라고 평가했다. /raul164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