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우르르’…요즘 부동산 시장, ‘양떼효과’
연말까지 고가 아파트값 조정 받을 것
[땅집고] 지난해 추석 명절 귀경길에 적지 않은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에 ‘배신’을 당했다. 밀리는 고속도로를 벗어나기 위해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국도로 향했지만 더 심한 정체를 겪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km를 가는 데 5시간이 걸렸다는 경험담까지 나왔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개발한 최첨단 정보통신 기기가 오히려 혼잡을 유발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니 행동이 서로 비슷해지면서 한쪽으로 몰리는 극심한 쏠림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요새 부동산시장에선 집단사고와 군집행동이 특히 두드러진다. 시장 참여자가 들떠만 있으면 같이 놀고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른바 ‘양떼효과’다. 촉구·야구장 관중처럼 달아오르다가 어느 순간 냉랭해진다. 다만, 이번 거래량과 거래심리 변화는 3년여 만의 특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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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7 대책으로 연말까지 고가주택 조정국면 맞을 것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에만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량은 3505건에 달했다. 하지만 3월에는 1만3515건으로 두 달 전보다 2.9배 늘어났다. 4월에는 전달 반 토막 수준(5471건)으로 거래되더니 5월(8090건)과 6월(8579건)은 다시 치솟았다. 거래량으로 본다면 거의 롤러코스터 수준이다.
특히 투자수요 성격이 강한 매매는 정책이나 심리 등 외부 요인 영향을 그때그때 받는다. 매매시장이 상대적으로 더 들쑥날쑥한 흐름을 보이는 이유다.
거래가 빈번한 대도시 아파트 시장에선 모방과 경쟁심리가 겹치면서 거대한 군집 흐름이 자주 나타난다. 마치 인파가 몰린 백화점에서 옆 사람 눈치를 보면서 고가의 물건을 따라 사는 꼴이다. 일상생활에서 남 따라 하기는 정보 부족을 메우려는 합리적 행동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에서는 이보다 ‘포모(FOMO: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충족’처럼 비합리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안 심리가 팽배할수록 집단의 일원으로 동화하려는 욕구가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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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동산시장에선 군집행동도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엿보였지만 이젠 딴판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 전달이 일반화하면서 일반 아파트에서도 떼 짓기가 심해지고 있다. 즉, 실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비슷한 부동산 정보를 접하면서 소비자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설명이다. 군집행동은 집값 상승기엔 주로 나타난다는 연구 논문이 많지만 요즘 들어선 그렇지도 않다. 비싸게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의미하는 ‘풉(FOOP: Fear Of Over Paying)증후군’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6·27 수도권 대출 규제 예고로 강남권이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아파트 시장에서 매수자가 종적을 감췄다. 가격이 내려갈 텐데 굳이 떨어지는 칼날을 두 손으로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집단적 손실 회피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이번 대책의 직격탄을 맞은 고가주택은 3~6개월, 나머지 중저가 주택은 12개월 조정국면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 오로지 ‘아파트’로만 몰리는 돈…시장 변동성 완화하는데 초점 맞춰야
요즘은 부동산시장 체질도 많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힘은 공룡, 움직임은 광속, 머리는 슈퍼컴퓨터’로 바뀌었다. 시장은 막대한 돈과 빠른 정보 유통, 구성원 간 ‘정보 되먹임’으로 힘에 의해 작고 민첩해졌을 뿐만 아니라 고집스러워졌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이 수퍼개미화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본격적인 거래 변화의 탐색 수준도 더 많이 필요할 정도로 느렸다. 문제는 최근 몇몇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철학 없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도입된 종부세를 보면, 주택 공시가 현실화 과정은 꽤 치밀하고 논리적이었다. 2005년 당시 전국 공시가 M2(통화량) 대비 비율은 1.8%에 불과했으나, 문재인 정부 때는 3%를 넘기도 했다. 시장의 힘이 그 사이 4배 이상 커졌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규제책을 내놓으면 하루 밤새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1억~3억원 급락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힘이 세진 데다 신축 아파트 중심의 거주 수요가 흐름을 주도해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부동산 투자금이 아파트 시장으로만 쏠린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아파트 이외에 농지와 임야, 문재인 정부 때는 꼬마빌딩으로 자금이 각각 분산됐지만 지금은 아파트로만 몰린다. 이 같은 ‘아파트 편식 사회’에선 아파트로 유입되는 돈의 총량이 훨씬 커져 시장을 통제하긴 더욱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부 정책도 시장을 눌러 ‘집값을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변동성을 완화한다’는 말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가령 그대로 놔두면 연 5% 변동률이 나타날 수 있는데, 3%로 낮추는 게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시장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공존하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띤다. 시장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의사결정이 작약되는 추상적 개념이다. 시장은 변화의 과거보다 현재에 훨씬 똑똑해졌다. 시장의 평균화된 뎁다 시장 스스로 학습기능을 갖추면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시장은 진화의 힘이 작동한다. 하지만 불안 심리가 팽배하면 시장 참여자들은 군중공포의 비이성적 행동을 한다. 정보교류가 빈번한 AI 시대에는 펀더멘털이 달라지지 않아도 인간 심리 변화만으로 요동치지 않을까.
이젠 부동산 소비자도 냉정해야 한다. 섣불리 무리 짓기에 동참하면 이득은 커녕 광풍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집단 심리에 휘둘리기보다는 독립적 사고를 하는 게 필요하다. 한국으로 쏠리지 않는 생산의 균형추, 진짜와 가짜 정보를 걸러내는 분별력이 참된 덕목이다. /글=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