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하루 숙박료 4만 원. 모텔보다 싼 가격에 운영되는 호텔들이 즐비합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중심가에 9층짜리 건물이 10년 넘게 골조 상태로 방치돼 있습니다.
2025년 기준, 정선군 전체 숙박시설 객실 수는 7901실인데요. 이 중 무려 6666실(84.3%)이 고한·사북 지역에 몰려 있습니다. 이 중 1190실은 도시형 숙박시설로 분양형 숙소입니다.
문제는 공급은 넘치지만 수요는 뚝 끊겼다는 점입니다. 분양형 숙소는 대부분 월세나 단기임대로 전환됐고, 객실 요금은 하루 4만~5만원 수준까지 하락해 모텔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입니다. 1조4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카지노가 있는 강원도 정선이지만, 호텔은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2000년도에 개장한 강원랜드였습니다. 정선군 고한읍에 설립된 강원랜드는 내국인 출입이 허용된 유일한 카지노인데요. 2023년 기준 강원랜드의 연 매출은 1조4269억원으로 이 중 87.8%가 카지노 수익이었습니다. 단일 시설 기준으로 아시아 최고 수준입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주요 카지노들보다 높은 수익 구조를 기록했고 지방 소도시 정선군의 재정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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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랜드, 정선군 재산세 45% 차지…군민에 ‘현금 복지’까지
2024년 정선군의 재산세 총액은 약 56억원인데요. 이 중 강원랜드가 납부한 세급은 약 28억6200만원입니다. 이는 정선군 전체 재산세의 약 45%를 차지하는 규모로 강원랜드가 정선 지역의 지방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한편, 지난 3월 정선군은 강원랜드로부터 받은 2024년 회계연도 배당금을 활용해 군민 약 3만3600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해당 배당금은 강원랜드의 영업이익 중 정선군이 지분율 약 37.9%에 따라 받은 주주 수익으로 세금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긴합니다
강원랜드 개장 이후, 정선군은 외지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특히 고한·사북 지역은 일종의 ‘카지노 프리미엄’을 기대한 숙박시설 및 상가 투자 열풍에 휩싸였는데요. 신규 호텔과 리조트, 오피스텔, 상가가 우후죽순 들어섰고, 분양형 수익시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실수요와 장기 수요 예측 없이 외지 자본만 유입되면서, 초기 호황이 지나자 수익 구조가 빠르게 무너졌다는 점입니다. 단기 수익에만 집중한 공급이 도시에 지속 불가능한 부동산 과잉을 남긴 것입니다.
2025년 기준 정선군 전체 숙박시설 객실 수는 7901실인데요. 특히 사북 지역에만 4022실이 밀집돼 있으며, 이 중 1190실은 도시형 숙박시설로 분양형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양형 숙박시설은 수요가 줄자 대부분 월세나 단기임대로 전환됐고, 객실가는 하루 4만~5만원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수익률이 급감하자 투자자들은 빠르게 철수했고, 임대 전환으로 생존을 시도한 숙박시설조차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사북 시내에는 9층짜리 모텔 건물이 10년 넘게 골조 상태로 방치돼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습니다. 일시적 특수에 기대 과잉 공급된 유휴 건축물은 이제 정선의 부동산 리스크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수요가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방문객 감소입니다.
■ 주말 예약 6만원대…카지노, 호텔 모두 수요 급감
공공데이터포털 ‘강원랜드 입장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강원랜드 카지노의 하루 평균 입장객 수는 약 7900명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 2020년에는 1600명, 2021년엔 2300명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이후 점차 회복해 2023년에는 6600명, 2024년에도 6500명대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장 초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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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는 개장 당시 하루 1500명 수용이 한계였지만 평일 평균 3500명, 주말엔 5000명 이상이 몰렸습니다. 개장 3년 만에 누적 방문객 300만 명을 넘기며, 국내 유일 내국인 카지노의 폭발적인 수요를 입증했는데요. 현재는 주말 예약가가 6만원대까지 떨어졌고 성수기에도 빈 객실이 흔합니다. 호텔 관계자는 "화려한 외관만 남고 고객은 사라졌다"며 "호텔이 모텔 가격을 따라가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카오와 닮았습니다. 2013년 마카오는 연간 450억 달러의 카지노 수익을 기록하며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도박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고급 콘도, 리조트, 국제학교가 들어서고 도시 전체가 부동산 투자처로 변모했습니다. 지나치게 카지노 산업에 의존한 경제 구조는 팬데믹이라는 외부 충격에 취약했습니다.
마카오의 GDP는 팬데믹 기간 절반 이상 급감했고 부동산 시장 역시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2025년 1분기 기준 마카오 주택가격지수는 202.4포인트로, 전년 동기 대비 10.6% 하락했습니다. 마카오 정부는 2022년 6개 카지노 업체와의 재계약 조건으로 10년간 160억 달러를 비카지노 산업에 투자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 자금은 테마파크, 문화시설, 마이스(MICE) 산업에 투입될 예정인데요. 마카오는 탈카지노 경제 구조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강원랜드도 복합리조트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습니다. 2024년 '복합리조트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인천 영종도의 인스파이어 리조트와 파라다이스시티를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인스파이어는 국내 최초 아레나형 공연장을 갖춘 리조트로 SNS 상에서 미디어아트 콘텐츠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예술 전시를 전면에 내세워 단기간 7만명 이상을 유치하며 비카지노 콘텐츠가 흥행한 사례입니다. 두 리조트 모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체 수익 중 비카지노 매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카지노 비중이 70% 미만으로 낮아졌고, 인스파이어는 카지노와 비카지노 매출이 각각 50%씩을 차지하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반면 강원랜드는 여전히 전체 매출의 87.8%가 카지노에서 발생하고 있고, 비카지노 매출은 12.2%에 불과합니다. 방문객 99%가 내국인이라는 점도 시장 성장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냅니다. 결국 도시는 산업이 단일할수록 외부 충격에 가장 취약해집니다. 팬데믹, 규제 변화, 인구 감소 등 어떤 리스크가 터지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바로 부동산 시장입니다. 지금 정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호텔이 모텔 값’ 현상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닙니다. 카지노에 지나치게 의존한 구조적 취약성 때문입니다.
강원랜드가 복합리조트로 전환하지 못하면 정선의 숙박업소는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가고, 지역 경제 역시 회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카지노는 도시를 살릴 수 있지만 지탱하지는 못합니다. 강원랜드, 그리고 정선군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까요? /im-gj@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