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어떤 집은 (임장크루에게) 100번 가까이 보여준 적도 있어요. 가격을 내려야 팔릴 법한 집인데 집주인은 진짜 수요가 많은 줄 알고 가격을 내릴 생각을 안 해요. 사지도 않을 거면서 가격에 바람만 넣고 있는 거예요.” (성동구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최근 서울 주요 지역과 재건축·재개발 예정지 인근에는 주말마다 삼삼오오 모여 현장을 둘러보는 이른바 ‘임장크루’가 눈에 띄게 늘었다. 부동산을 직접 둘러보며 시세와 입지를 공부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스터디형 임장’이 한 유명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요자와 구분 어려운 ‘임장크루’
임장크루는 편한 복장 차림에 소형 지도나 카페에서 내려받은 체크리스트를 들고 나타난다. 적게는 3명, 많게는 수십 명까지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인근 중개사무소를 돌아다니며 매물 조건과 시세를 묻는다. 겉보기에는 실수요자와 구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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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임장 스터디’라는 이름으로 사전 모집을 받아 팀을 짜고 주말마다 노선을 정해 임장을 다닌다. 방문 후에는 단지별 비교 보고서나 ‘투자 분석 콘텐츠’를 제작해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에 공유한다. 일부 스터디는 참가비 명목으로 1인당 3만~5만원을 걷고 실제 매물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많게는 10만원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실제 거래 의사가 없는 ‘가짜 수요자’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수요자처럼 행동하면서도 계약은 전혀 하지 않아 매물만 들쑤시고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 일부는 집주인의 동의 없이 내부 사진을 촬영하거나 콘텐츠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 사생활 침해 우려도 나온다.
■’임장크루’ 무분별한 방문…시장 왜곡으로 이어져
이들의 무분별한 방문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쪽은 현장 중개업자들과 집주인이다. 중개업계에선 “고객을 가장한 ‘탐방객’이 주말 장사를 망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서울 성북구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집 보러 온다더니 당일 노쇼(no-show)도 많고, 막상 와서는 집 구조나 인테리어에 대한 품평만 늘어놓고는 연락도 끊긴다”면서 “집주인들도 ‘왜 자꾸 보여주기만 하고 계약은 안 되느냐, 우리집이 모델하우스냐’며 중개사 탓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가 안 되는 주말에 임장크루만 상대하다 보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친다”고 토로했다.
성동구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도 “실거래는 없고 방문만 반복되면 집주인은 매수 수요가 많은 줄 알고 가격을 내리지 않고 버티기 시작한다”며 “결국 거래는 사라지고 호가만 오르는 시장 왜곡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서울 내 일부 재건축 단지나 구축 아파트에서는 수개월째 실거래가 끊긴 채, 집주인들 사이에서 ‘버티기 심리’만 퍼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인중개사 피해 확산…’임장 기본보수제’ 도입 움직임
이 같은 피해가 확산하자 공인중개사 단체는 제도 개선 움직임에 나섰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최근 ‘임장 기본보수제’ 도입을 공식 검토 중이다. 이는 무분별한 임장을 방지하고, 실거래 가능성이 없는 방문에 대한 최소한의 시간 보상을 중개사에게 제공하자는 취지다.
해당 제도는 매물 방문 시 임장비(방문보수)를 선징수하되 실제 계약이 체결되면 해당 금액을 중개보수에서 차감해 돌려주는 방식이다. 반복적으로 현장을 소비하는 임장크루 같은 ‘가짜 수요자’를 거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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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숙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북부지부 성북구지회 대의원은 “공인중개사는 사실상 계약이 성사되기 전까지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면서 “최근 임장크루와 같은 허위 매수자들로 인해 현장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어, 이제는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임장 기본보수제는 시장 신뢰 회복과 투명한 중개질서 확립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며, 국토부 차원의 제도 개선과 공인중개사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수요자에게까지 임장비를 요구하게 되면 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늘고 오히려 부동산 직거래가 확산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법적으로는 현재 공인중개사 보수는 계약 성사 이후에만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임장비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도 현실적인 장애물로 꼽힌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