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당선 보름 만에 당선 무효 통보를 받은 서울 성북구 ‘정릉골 재개발’ 조합의 신임 조합장이 이번에는 법원 결정으로 업무 복귀한 지 하루 만에 해임 통보를 받았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릉골 재개발 조합장 A씨는 최근 조합 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 무효 결정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이 인용돼 업무에 복귀한지 하루 만에 해임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임시 총회를 통한 해임 결정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지난해 11월 전임 조합장 사퇴 이후 조합 업무 공백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합원들의 피해가 늘어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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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인근에 위치한 정릉골 재개발 구역은 1960년 청계천 무허가주택 철거민들이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으며 조성됐다. 도시가스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낙후한 곳이었지만, 고급 타운하운스로 개발 예정이다.
재개발을 완료하면 지하 2층~지상 4층 81개동, 1411가구 규모의 ‘르테라스 757’로 변신한다. 서울시내 유일한 1000가구 이상 대단지 테라스하우스가 된다. 시공사는 포스코이앤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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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장 당선 15일만에 ‘무효’ 통보
A씨는 올해 1월 23일 조합 임시총회에서 진행한 보궐선거에서 신임 조합장 당선 후 15일이 지난 2월 7일 조합 선관위로부터 당선 무효를 통보받았다. 선관위가 밝힌 결정적인 당선 무효 사유는 ‘허위사실 유포’였다.
A씨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실질 이주율 90%를 현실화하고 2025년 내 빠른 착공, 2028년 입주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선관위는 당시 “현재 공식 이주율이 64%에 불과한데 비현실적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정릉골 일대는 2024년 1월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8월부터 이주를 시작했다. A씨에 따르면, 집 대부분이 비어있어 이주율을 실질적으로 90% 이상이지만, 공식적으로 이주 처리되지 않은 가옥이 많다.
A씨는 절차상 문제도 지적했다. 조합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당선 무효 사유가 있다고 해도 선거 5일 이내에 선관위 의결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선거에서 낙선한 B후보의 이의신청(2월3일), 소명 통보(2월5일), 당선 무효 통보(2월7일)는 1월 23일 선거 이후 11~15일 사이에 이뤄졌다.
법원은 “불확실한 내용에 대한 단정적 표현이 공약, 선거공보에 기재돼 있다 하여 허위사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선 무효 결정은 선거관리규정에서 정한 기한을 준수하지 않은 중대적 하자가 있다”고 덧붙였다.
■ 조합장 업무 복귀 하루 만에 ‘해임’ 결정
가처분 인용으로 A씨는 조합장 업무에 복귀했지만, 하루만에 해임됐다. 조합은 19일 임시총회를 열어 A씨의 조합장 해임 의결했다. 전체 조합원 640명 중 321명이 참석했고, 298명(반대 15명·기권/무효 8명)이 찬성했다. 이 중 299명은 서면의결했고, 현장 참석자는 22명뿐이었다.
조합장 해임안의 대표발의자는 지난 2월 당선 무효 결정을 주도한 선관위원들이다. 총회 15일 전인 4월 4일 발의해 5일 A조합장에 안건 회의자료를 보냈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여부가 나오기도 전이다.
A씨는 “조합 임원들은 법원의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해임을 준비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홍보요원(OS요원)을 고용해 고령의 조합원들을 찾아가 해임안에 사인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곧 총회의 해임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당선 무효 결정과 해임 결의는 조합 임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B후보를 조합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B후보는 조합 임원들과 함께 19년간 재개발 사업을 함께 하다가 2017년 조합 설립 당시 초대 조합장을 역임했고, 이번 선거에 재출마했다.
반면 A씨는 시중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약 8년전 정릉골 구역에 들어왔다. 비상대책위원회격인 내재산지키기위원회를 이끄는 등 조합 임원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였다.
조합 내부에서 소송전이 거듭되면서 조합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커진다. 이주비 대출과 구역 인근 국공유지 매입 등으로 착공 전부터 약 3900억원 규모의 조합 빚이 생겼다. 한달에 나가는 이자만 약 10억원에 달한다.
A씨는 “업무에 복귀해 조합 임원진을 품고 빠르게 착공해 조합원 부담을 줄이고 싶었는데 안타깝다”며 “법적 대응을 통해 하루 빨리 조합을 정상화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raul164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