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KT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노예계약" 건설업계의 명운 걸린 소송전

뉴스 김서경 기자
입력 2025.03.06 06:00

[땅집고] 쌍용건설과 KT의 경기 판교 신사옥 공사비 추가 지급을 둘러싼 갈등이 소송전으로 번졌다. 쟁점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 효력 여부다. 물가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법원 판결이 결정될 전망이다.

판교 KT 사옥을 시공한 쌍용건설은 물가 상승을 이유로 171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청구했다. KT 측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근거로 공사비를 더 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하는 판례가 나와 소송전의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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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2023년 10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KT 판교 신사옥 앞에서 쌍용건설 직원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쌍용건설


■‘코로나19·러-우 전쟁’ 불가항력적 요인 인정 받을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는 지난 1월 14일 KT가 판교 신사옥의 시공사 쌍용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171억원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1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부와 양 측은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쌍용건설은 2020년 967억원에 KT판교 신사옥 건설 공사를 수주한 뒤 2023년 4월 건물을 완공했다. 지하 4층~지상 12층 규모로 31개월 공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공사 기간 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등이 발생하면서 자재비와 인건비 등 공사비용이 대폭 올랐다는 것이다. 쌍용건설 측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가피한 사유로 KT 판교 신사옥 공사비가 오른 것은 사실상 불가항력적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즉,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주처인 KT가 공사비 상승분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KT는 도급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이유로 공사비 추가 지급을 거부했다. 지난해 5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KT 측은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명확한 해결을 위해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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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특약 무효 판단…공사비 분쟁 늘어나나

향후 공사비 소송에서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 효력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말 그대로 ‘물가 변동으로 인해 계약금액 변경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특약이다. 법조계는 발주처와 수급처가 체결한 계약이라는 점에서 통상적으로 이 특약을 유효하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넣었더라도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부산에 있는 한 교회가 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선급금 반환 청구에서 시공사가 승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외 상거래 분쟁 중재 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은 한국중부발전과 국내 중견 건설사 간 계약에 기재된 ‘물가변동배제 특약’을 무효로 봤다. 그러면서 중부발전 측에 공사비 청구분 36억원 중 75% 수준인 26억원 상당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중재원 판정은 대법원 확정 판결과 같은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법무법인 동인의 김문수 변호사는 “그간 법원이 물가변동이 있더라도 계약금액 변경을 배제하는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특약의 효력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특약의 효력이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극심한 물가변동으로 인해 도저히 시공사가 감당할 수 없거나, 시공사의 귀책사유 없이 공사기간이 늘어난 경우까지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인상을 부정하는 것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땅집고] 쌍용건설이 지은 KT 판교 사옥 예상 모습. /쌍용건설


업계에서는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건설업계 줄도산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판부가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면 원청업체는 과도한 공사비용을 감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청업체 도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면 이들에게 일감을 받는 하청업체의 살림은 더욱 팍팍해진다. 법원을 통해 공사 대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으나, 원청이 받을 공사금액 한도에서 지급을 받으므로 이 역시 물가상승분 반영은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도 모든 손해를 건설사가 감당해야 한다는 일종의 노예계약”이라면서 “KT가 승소할 경우, 건설사의 연쇄부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원청업체 재무 구조가 악화했을 때, 협력업체는 하도급 대금 일부 수령을 위해서라도 손해를 감수하고 공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가변동분이나 추가 투입 공사비를 받는 것 역시 어렵다”고 했다. 그는 “현재 건설업계는 시공사가 공사비 상승분을 감당하지 못해 부실화하면 하청업체 역시 직격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KT와 시공사간 공사비 분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KT 광화문 사옥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준공을 앞두고 KT에 300억원가량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 서울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광진구청 신청사·롯데캐슬 이스트폴)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 역시 1000억원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회사는 아직 공사비 상승분 지급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았다.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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