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리모델링 표류 개포동 성원대치2단지…조합간부 주택은 가압류
[땅집고] “조합장이 18년 동안 쓴 돈을 우리보고 내라고요? 저는 절대 안 낼 겁니다. 말 같지도 않네요. 어차피 식물 조합인데 법원에서 파산 선고 받아야 합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성원대치2단지 주민 A씨)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서울 강남권 한 대단지에서 조합이 건설사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조합원들이 파산 신청을 추진하는 사례가 나왔다.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 총액은 약 180억원에 달한다. 하루 이자만 800만원이다. 가구 당 1000만원가량을 부담하면 빚을 갚을 수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주민은 전무하다. 빚 덩이에 앉은 리모델링 조합의 파산 선고만 기다리는 이 아파트.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 성원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 180억 빚 진 이유
논란이 벌어진 곳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성원대치2단지. 지하철 3호선 대청역 7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역세권 입지다. 1992년 준공한 이 아파트는 최고 15층, 전용 33~49㎡로 구성된 1758가구 대단지다.
용적률이 174%로 낮은 편이지만, 소형 가구로만 구성돼 있어 일찍이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2008년 설립된 리모델링 조합은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수직증축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으면서 수평증축으로 선회했고, 2016년 DL이엔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을 리모델링 시공사로 선정해 사업비를 빌렸다.
그러나 조합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2021년 6월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시공권을 잃은 2023년 6월 DL이앤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은 조합을 상대로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재판부는 조합이 두 건설사에 사업비를 배상하고, 2021년 10월 28일을 기준일로 이 금액을 다 갚는 날까지 매년 연 15%의 금리를 적용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리모델링 조합의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됐다. 2025년 2월 말 기준, 업계에서는 조합이 갚아야 할 금액을 약 180억원으로 추산한다.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조합 집행부는 잠적 상태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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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아파트 “조합 파산만이 답” 외친다
나날이 빚만 늘어나는 가운데 조합원들은 하루 빨리 조합을 없애야 한다고 보고 있다. 리모델링을 찬성했던 조합원마저 리모델링 조합 해산으로 돌아섰다. 결국 성원대치2단지 조합원들은 ‘대치성원2단지리모델링 조합’의 파산 신청을 위한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조합 임원진 외에 새로 지정한 청산인이 해산 결의서를 확보해 파산 신청 등 청산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강남구 개포동 성원대치2단지 상가 A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리모델링을 찬성했던 사람들도 조합을 없애고 재건축을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며 “리모델링 조합장이 18년 동안 사람도 안 바뀌고 혼자 했으니, ‘그 사람이 다 책임져야 한다’고 보는 조합원이 90%”라고 했다. 현재 조합장 등 조합 임원 7명의 집은 가압류된 상태다.
아울러 조합원들은 최근 조합 해산을 안건으로 하는 조합 총회를 개최하려 했다. 그러나 조합장이 신청한 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총회가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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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가구 당 900만원 정도를 부담하고 조합 빚을 청산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다만, 현실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 무산됐다. 분담금 납부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완료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고, 주민 대다수가 이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서다.
아파트에서 만난 성원대치2단지 주민 김모씨는 “가구 당 돈을 내고 조합 빚을 갚아주는 게 말이 되냐”며 “그 사람들이 썼으니, 그 사람들이 다 해결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 성원대치2단지, 리모델링 접고, 재건축 갈 수 있을까?
이 단지 주민들은 조합 해산 후 재건축을 하자는 입장이다. 다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나이가 많은 일부 주민들은 리모델링 뿐 아니라 재건축 사업도 반대한다. 이주와 분담금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성원대치2단지 주민 이모씨는 “재건축이 재산 증식 차원에서는 이익일지 몰라도, 환경 개선 측면에서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올 때 5000만원을 들여 집을 다 고쳐 현재 아무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이어 “양재천과 지하철역이 있어 편하게 살고 있는데, 재건축이든 리모델링을 다른 지역에 가서 몇 년 살아야 하지 않나”라며 “이 나이에 불편하게 거주 환경을 바꿀 필요가 뭐가 있나”라고 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