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좀 영세한 회사는 거의 폐업했다고 봐야죠. 출판사 직원이 주 고객인데 당연히 장사도 안 되죠. 20년째 장사하던 식당도 못 버티고 나갔어요.”(파주출판도시 내 식당 운영 중인 노씨)
경기도 파주시 대표 명소로 알려진 파주출판도시입니다. 평일을 감안하더라도 거리에는 적막만이 감돕니다. 출판도시 대로변 상권을 걷는 인적도 없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빈 건물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건물 하나가 통으로 비워진 곳도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5년 1월 기준 파주출판도시 입주사는 총 843곳. 하지만 이에 맞지 않게 점심시간에도 오가는 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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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직장인 수요로 식당들이 유지됐었지만 기업이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면서 상인들 한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파주출판도시 내 상가 임대료는 3.3㎡(1평)당 5만원에서 6만원 수준. 사무실 임대료는 좀 더 낮은 3만5000원 수준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평일에는 출판사 직원들이 북적이고, 주말에는 데이트명소나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문전성시를 이뤘었는데요.
파주출판도시 개발 초기 때만 해도 2014년까지 본사를 이전하는 출판사에 한해 6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등의 혜택이 있었죠. 이로 인해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입주를 서두르고, 용지를 매입하지 못한 출판사들도 임대 입주를 추진하는 등 출판업계에 '파주붐'이 불기도 했습니다.
호황이 지나가고 종이 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한국 출판생산 통계’에 따르면 2019년 9979만부였던 신간 발행 부수는 2020년 8165만부, 2021년 7995만부, 2022년 7291만부로 감소한 데 이어 2023년에는 7021만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런 탓에 파주에 자리잡았던 출판사와 인쇄소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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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파주시에서 주최하는 축제도 자주 열렸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마저도 뜸한 상황입니다. 출판도시는 지역 명소임에도 교통이 불편한 편이라 외부에서 방문하기에는 문턱이 높은 편이죠. 예전처럼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지 않으니 방문객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상업지역은 총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중 한 구역인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상권의 기능을 잃은 상태입니다.
상업지역 중 또 다른 구역으로 이동해봤습니다. 복합쇼핑센터인 이채쇼핑몰입니다. 해, 은하, 별, 달로 동이 나뉘어 있습니다. 이곳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요. 안으로 들어가보니 영업이 멈춘 듯 텅텅 빈 상태입니다. 쇼핑몰 내 유일하게 유동인구를 유지하던 영화관마저 지난해 7월 폐업하며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이채쇼핑몰은 2004년 개장했습니다.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1만5000평 규모로 지어졌는데요. 340개 점포가 입점할 예정으로 아웃렛, 영화관, 공연장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복합쇼핑몰이었습니다. 개장 당시 일일 방문객을 3만명으로 예상하며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는데요.
하지만 현장은 처참한 상태입니다. 아예 건물 입구를 막아 둔 곳도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도 운행 중지된 지 오래입니다. 아웃렛이 있던 2층은 가구들로 채워져 가구 백화점으로 회생하고자 했지만 방문객은 한 명도 찾기 힘듭니다.
이채쇼핑몰 가구 매장 상인 A씨는 "일주일에 10명도 안 온다"며 "이런 불황은 처음 겪는다. 구매로 이어지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2003년 분양 당시 이채쇼핑몰 분양가는 지상 층이 평당 1180만~1500만원, 지하 층은 700만~920만원 선이었습니다. 상가 소유주만 수백 명에 달하는데요. 현장에는 상가를 판다는 현수막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채쇼핑몰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도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상가를 개별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한꺼번에 매입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1층 편의점과 지하 키즈카페, 두 곳을 제외하고는 이채쇼핑몰 방문객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는 공실 문제로 무너지는 상권이 많죠. 하지만 이곳처럼 방치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상권도 있습니다. /0629a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