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경의중앙선 풍산역에서 남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경기 고양 풍동2도시개발사업구역이다. 이 곳에는 오는 6월부터 아파트와 오피스텔 4000여가구가 입주한다. 입주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현지 부동산 시장에서는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서는 분위기다. 이미 풍동2지구에서는 입주 전인데도 최대 1억원대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가 붙은 매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산의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초대형 호재라고 불리는 GTX-A(수도권광역급행철도) 개통 이후에도 일산 집값이 잠잠한데, 대규모 공급 폭탄까지 터지면 시장이 더 가라앉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실제 일산 아파트 가격은 GTX-A 개통 두 달이 되도록 기대했던 가격 상승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부분 지역에서 매물이 쌓이는 추세다.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최근 2달간 고양시 일산동구와 일산서구 아파트 매물 건수는 나란히 9.9% 늘었다. 장항동(4.1%), 대화동(1.3%) 등 신축 아파트가 많은 지역도 매물이 늘었다.
■ 2019년 이후 5년만에 4000가구 입주 폭탄
일산 지역에 대규모 입주 물량이 터지는 건 2019년 이후 5년여만에 처음이다. 당시 킨텍스역 주변으로 킨텍스 원시티 등 아파트 3138가구와 오피스텔 2854실이 대거 입주했다.
풍동2지구는 풍동 1183일대 34만㎡(10만평)에 아파트 3개 단지, 오피스텔 3개 단지 등 총 6개 단지가 들어선다.
주택은 총 4066가구다. 모두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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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풍동더샵데이엔뷰 1~3단지’ 아파트가 올해 6월 입주한다. 1단지 866가구와 2단지 737가구, 3단지 487가구를 합해 총 2090가구다. 3개 단지 모두 최고 36층이며 전용 64~84㎡다.
이어 7월에는 바로 옆에 주거용 오피스텔 ‘더샵일산엘로이’가 준공한다. 1단지 741실과 2단지 494실, 3단지 741실을 합해 총 1976실이다. 전 실이 전용 84~247㎡이며 최고 42층이다.
■ 오피스텔 마피 1억에도 안 팔려
풍동2지구 입주가 다가왔지만 부동산 시장 반응은 차갑다. 더샵데이앤뷰에서는 마피 매물이 속출하고 있지만 거래가 없다. 1단지 전용 74㎡는 분양가(2차 조합원 기준) 6억8606만원보다 3000만원 낮은 6억5606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전용 64㎡는 마피 5000만원 매물도 눈에 띈다. 2·3단지에도 마피 매물이 나와 있다.
오피스텔은 더 좋지 않다. 더샵엘로이2단지 전용 84㎡(11층) 매물은 마피만 1억원에 달한다. 분양가(6억8620만원)을 고려하면 계약금의 2배 가량을 포기하는 속칭 ‘더블계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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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가 붙은 가장 큰 이유는 인프라 부족이다. 풍동2지구는 일산에서도 아직까지 교통·상권·학군 등 생활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평가다. 더샵데이앤뷰3단지는 풍산역까지 도보 5분이면 도착해 경의중앙선과 서해선을 탈 수 있다. 그러나 2개 노선은 배차 간격이 최대 30분에 달한다. 그나마 서울행 광역버스가 서는 정류장도 없다.
애초 분양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높은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더샵데이앤뷰는 지주택 사업이라서 1차와 2차 조합원 분양가격이 다르다. 1차는 전용 64㎡ 기준 약 2억5000만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하지만 같은 면적 2차 분양가는 6억원대였다. 더샵데이앤뷰1단지에서 700m쯤 떨어진 ‘일산센트럴아이파크’(1802가구) 전용 59㎡ 고층 매물이 이달 초 5억2400만원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더샵데이앤뷰의 마피 매물도 여전히 가격이 비싼 셈이다.
오피스텔도 마찬가지다. 더샵엘로이는 2021년 7월 분양 당시 전용 84㎡ 기준 최고 8억원 정도였다. 당시 풍동 일대 전용 84㎡ 아파트 시세(약 4억8000만원)보다 배 이상 높았다. 결국 고분양가 여파로 선착순 분양을 진행했다.
■ 올해부터 6만가구 추가 공급 대기
일산 주민들은 지속적인 공급 폭탄으로 집값 하락과 함께 베드타운 이미지가 더욱 고착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고양시 주민 김모(38)씨는 “누가 ‘일산에 살만한 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매매가 아닌 전세만 추천한다”며 “어떻게 20년 내내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아파트 개발 소식만 들릴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앞으로다. 일산은 올해부터 6만여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주택 공급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3기 신도시인 창릉지구에서만 3만8000여 가구가 나온다. 대곡역세권(9400가구)과 장항지구(1만1857가구)에서도 총 2만가구 이상 예정돼 있다. 공급만 놓고 보면 장기적으로도 집값이 오르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부동산연구소장은 “노후계획도시특별법과 GTX-A 개통 호재로 일산 분위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대규모 주택 공급은 큰 악재여서 집값만 놓고 보면 남양주나 광명에 밀릴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대규모 주택 공급이 집값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렵지만 영향이 미미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풍동2지구 4000가구 입주 직후에는 주변 매매·전세 시세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풍동은 광명 등 다른 지역 신축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일산은 신축 아파트 비중이 매우 낮아 구축 가격에 관계없이 시세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