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 남산 밀레니엄 힐튼호텔의 로비가 원형 보존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진 새로운 설계안이 나와 논란이다.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에 이르는 약 18m의 층고를 확보한 기존 로비는 재건축 후 지하로 내려가고, 각 층 별로 바닥이 새로 생겨 개방감과 확장감이 사라질 전망이다. 로비가 덮이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사진 대지를 활용해 높은 층고를 확보한 기존 로비는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힐튼호텔의 상징적 공간으로 평가 받는다. 건축계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사라질 위기가 처했다며, 호텔 로비의 원형 보존 의미가 퇴색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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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건축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건축역사학회는 지난달 성명을 발표하고 ‘지난 12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설계안은 지금까지 원형 보존 논의와는 무색하게 공간적 속성을 크게 훼손했다’고 했다. 최근 공개된 설계안에서는 로비를 지하로 이동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어 사실상 보존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주장이다. 호텔 소유주인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해 12월24일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학회에 따르면, 2023년 말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통과 변경안에 힐튼호텔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로비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원준 한국건축역사학회 이사는 “힐튼호텔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증거물”이라며 “보존 없이 철거하는 것은 도시 역사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현재의 로비 지하화 계획은 명목상 보전의 겉모습만 취하고 있을 뿐 깊이 있는 접근이라 볼 수 없으며,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당초 설계안은 지상층 바닥을 투명한 재질로 설계해 시각적으로나마 지하층이 보이게끔 하려 했으나, 최종안은 이마저도 변경돼 단절된 느낌을 주는 설계로 변경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통합 심의 과정에서 건축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힐튼호텔은 1977년 착공해 1983년 완공했다. 1986년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았다. 당시 한국 건축계의 독자적인 역량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을 구현한 사례로 평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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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건축가는 재개발 계획이 추진될 때 브론즈·대리석 등의 마감재가 쓰인 로비 공간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건축가는 힐튼 호텔 상징이던 로비(아트리움)에 대해 “메인 로비에 들어와 낙차를 이용해 거대하고 우아한 공간을 만나도록 디자인했다”며 “호텔에 들어왔을 때 모든 사람이 우아하고 세련된 공간에서 환대를 받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연광이 드는 천창과 함께 분수를 설치해 마치 유럽의 정원처럼 설계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힐튼호텔 개발 사업은 기존 호텔을 헐고 대규모 복합시설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지하 10층~지상 39층, 연면적 33만8982㎡ 규모 업무시설, 호텔, 판매시설 등이 들어선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