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 노선 2단계 구간(서울역~운정중앙역)이 지난달 개통했다. 하지만 경기 파주 운정3지구 내 기점인 운정중앙역 일대는 허허벌판이다. 주변으로 텅 빈 땅에 역사(驛舍)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같은 GTX-A 노선인 동탄역(경기 화성) 일대에 개통 전부터 롯데백화점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운정중앙역 일대에는 아파트 예정 부지만 8개 필지가 있다. 땅값만 1조원이 넘는다. GTX 역세권은 일반 지하철 역세권보다 입지가 더 좋아 개발 가치가 높은 알짜 땅으로 평가하는데 3~4년 이상 첫 삽도 뜨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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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만 1조원 넘어…경기 침체에 사업 중단
현재 운정3지구에는 운정중앙역을 둘러싸고 B1~6블록 등 총 6개 필지가 아파트로 개발될 예정이다. 모두 민간 부동산 시행사가 경쟁입찰을 통해 땅을 사들였다. 2개 블록은 A사, 4개 블록은 B사가 각각 샀는데 토지 낙찰가격만 총 1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A사가 보유했던 B3·4블록은 주상복합 아파트로 사업계획승인을 받고 2022년 6월 사전청약까지 진행했지만 지난해 7월 갑자기 사업을 취소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공사를 찾지 못했고 끝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것. 시행사 측은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계약금(455억원)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바람에 사전청약을 통해 당첨된 수요자들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국토교통부는 사전청약 당첨자 지위 승계, 입주 우선권 등에 대한 세부 협의를 마치지 못해 새 사업자 모집도 잠정 중단한 상태다. LH 관계자는 “빠르면 1분기, 늦어도 2분기 내로 신규 사업자 모집 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했다.
주상복합 아파트 부지인 B1·2·5·6블록도 사업 추진이 멈췄다. 해당 부지는 2021년 LH가 ‘6개월 내 사전청약 실시’를 조건으로 민간에 매각했다. 당시 B사는 공개입찰에 참여해 B1·2블록을 3694억원, B5·6블록을 3838억원에 각각 매입했다. 4개 블록 매입가는 총 7522억원이다. 현재 아파트를 짓기 위해 건축심의를 준비 중이지만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몇몇 시공사와 협의를 진행 중인 단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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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는 4개 블록 외에도 업무복합용지를 3027억원에 사들였고, 관계사를 통해 다른 상업용지도 8776억원에 낙찰받았다. B사 명의로 낙찰받은 부지만 5개다. 해당 토지의 공급 예정 가격은 6000억원 수준이었지만 공급가격보다 67~95% 비싸게 샀다. 매매대금만 1조원이 넘는데, 계약금만 냈을뿐 중도금은 연체 중이다.
■“공사비 오르고, 분양가상한제에 발목잡혀”
업계에서는 운정중앙역 일대 사업이 난항을 겪는 이유로 3가지를 꼽는다. 먼저 시행사들이 너무 비싸게 땅을 샀다는 것. 예정가격보다 최고 2배 가까이 비싸게 사는 바람에 애초부터 분양가를 올리지 않으면 사업성이 나오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GTX 개통 전후로 파주 아파트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여기에 최근 2~3년간 공사비가 급격하게 오른 것도 문제다. 파주운정3지구 아파트 사전청약 입주자 공고문에 따르면 평당 공사비는 600만원 수준이다. 이 정도 공사비로는 시공사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정중앙역 일대는 공공택지여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으로 분양가를 제한하기 때문에 사업성을 높이기가 어렵다. 최근 주변에서 분상제를 적용해 분양한 단지를 고려하면 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는 6억원 이하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2년전 B사가 시행한 아파트는 고분양가 논란에도 완판했지만 지금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며 “공사비를 올려주면 시행사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고 했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