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마다 새 브랜드 런칭했다가…입주자들 민원에 고통
[땅집고] “NO 한라비발디, YES 에피트!”, “분양 후 브랜드 변경은 명백한 사기분양!”
최근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사를 상대로 단지 브랜드를 ‘업그레이드’ 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건설사마다 주택 건설 시장 불황을 돌파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새 아파트 브랜드를 런칭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옛 브랜드를 달고 있는 기존 아파트 입주자들이 형평성과 집값 하락 문제를 들며 새 브랜드로 변경 시공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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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수요자들이 아파트 청약이나 매수에 나설 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로 브랜드를 꼽고 있다. 사람들이 아파트 브랜드가 시공사 역량을 나타내는 집약체라고 인식하면서, 어떤 브랜드를 달고 있느냐에 따라 추후 주택 환금성과 가격 상승 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이런 분위기를 겨냥해 건설사마다 기존 브랜드를 대체할 만한 ‘간판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먼저 대형 건설사들의 새 브랜드 런칭이 2022년 전후로 이뤄졌다. SK에코플랜트가 2000년 ‘SK뷰’를 출범한 이후 22년만에 ‘드파인’을 선보였고, 같은 기간 포스코건설도 기존 ‘더샵’에 이어 ‘오티에르’를 내놓았다.
올해부터는 중소건설사들도 줄줄이 새 브랜드 출시 소식을 알리고 있다. 금호건설이 2001년부터 쓰던 ‘리첸시아’와 2003년 ‘어울림’에 이어 20여년 만에 ‘아테라’를 쓰기로 했고, HL디앤아이한라는 1997년 내놓은 ‘비발디’를 27년 만에 접고 ‘에피트’를 쓰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기존 브랜드를 적용한 아파트에 거주하거나 분양받은 주민들은 건설사의 새 브랜드 출시 소식을 그닥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기존 브랜드 아파트는 낡고 뒤쳐진 느낌이 드는 만큼 집값 하락까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이미 입주를 마친 기존 단지들도 새 브랜드를 함께 쓰게 해달라는 입주자 민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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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디앤아이한라가 브랜드 변경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대표적인 건설사다. 지난 11월 22일 기존 ‘비발디’ 아파트 입주민들이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건설사 본사 앞에 모여 새 브랜드인 ‘에피트’를 적용해달라는 집단 시위를 벌이면서다. 이날 시위에는 2025년 9월 입주를 앞둔 경기 시흥시 ‘신천역 한라비발디’(1297가구)를 비롯해 충북 청주시 ‘월명공원 한라비발디 온더파크’(2026년·874가구), 인천시 계양구 ‘작전 한라비발디’(2025년·340가구) 수분양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전북 군산·김해 장유 등 전국 한라비발디 7개 단지 입주자들은 항의의 의미로 본사 앞에 근조화환을 발송하기도 했다.
기존 입주자 요구에 건설사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시공을 마친 아파트에 새 브랜드를 적용하려면 단순히 이름과 로고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는 색상을 넘어 설계나 조경, 디자인 등도 함께 바꿔야 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선 새로운 브랜드가 출범했는데 기존 단지에 이 브랜드를 적용하기 꺼려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애써 만든 브랜드 일관성을 지키려면 설계·디자인·조경을 전부 손봐야 하는 데다, 기존 아파트에 새 브랜드를 적용했다가는 이 단지에서 발생하는 하자보수가 전부 새 브랜드의 문제로 인식되는 것도 리스크기 때문에 입주자들의 민원을 무턱대고 다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