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올해 KT 판교 신사옥 시공을 맡은 쌍용건설은 KT측에 공사비와 관련해 물가 인상분을 반영한 171억원 증액을 요청하며 공공공사 공사비 갈등의 포문을 열었다.
KT는 도급계약서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쌍용건설의 요구를 거부했다. 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발주자가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에 반영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의미한다. 이 공사비 분쟁에서 법원은 두 차례 조정 권고를 했지만, KT는 모두 거부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KT가 내년에도 다른 시공 현장에서 공사비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측했다. 현대건설은 내년 상반기 중 1800억원 규모 KT 광화문 웨스트(WEST) 사옥의 리모델링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작년 상반기 300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투입됐지만 현대건설과 KT는 이를 두고 계속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건설은 KT 부지가 포함된 서울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공사를 진행 중으로 내년 1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롯데건설은 1000억원대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발주처인 KT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나에게 딱 맞는 아파트, AI가 찾아드립니다
최근 공사비와 물가 상승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공사가 중단되거나 건설사가 줄도산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부산 내 시공능력평가 7위를 기록한 신태양건설은 이달 최종 부도처리 됐다. 부산에서 도산한 건설업체는 올해 3분기까지 6곳에 달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부도 건설업체는 총 26곳으로 집계됐다. 2019년의 49곳 이후 가장 많은 기록이다.
국내 정치권이 대통령 탄핵 정국에 휩싸이며 불확실성이 심화한 가운데, 지난 주 미국에선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조기 중단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국내 건설업 장기 침체 위기가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고환율, 내수 악화, 원자재값 급등, 인건비 인상 등 공사비 상승 요만 확대되며 건설 업계가 끝이 보이지 않는 혹한기를 맞이할 것이란 관측이다.
☞당신의 아파트 MBTI, 조선일보 AI부동산에서 확인하기
■ 국토부, 공공 공사비 현실화 나선다…주택 PF보증 규모 5조원 확대
23일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건설 경기 위기에 대응해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설산업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 발표한 건설경기 회복지원 중 ‘공공 공사비 현실화’와 관련한 후속 조치다.
정부는 공공 부문에서 공공 공사비 현실화와 민자사업 활성화를 통해 공공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다섯가지 개선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첫째, 공사비 할증이 가능한 공사비 산정기준(표준품셈·시장단가)의 보정기준을 보다 시공여건(입지, 현장특성 등)에 맞게 신설·세분화한다. 신기술 등 공사비 산정기준 개선수요를 발굴 및 검증할 수 있도록 정부·전문가·업계가 참여하는 수요응답형 표준품셈 협의체도 운영한다.
둘째, 1989년부터 30여 년간 고정되어 있던 일반관리비 요율을 그간 산업여건 변화 등을 감안하여 중소규모 공사 대상으로 1~2%포인트 상향한다.
셋째, 낙찰률 형성구조와 업계 저가투찰 관행이 맞물려 80%대 초중반 수준으로 형성된 낙찰률을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순공사비’는 보장될 수 있도록 1.3~3.3%포인트 상향한다. 낙찰률이란 공공공사 입찰시 발주 금액 대비 최종 낙찰된 계약 금액을 말한다.
넷째, 공사비 급등기의 물가 상승분이 공사비에 반영될 수 있도록 공사 발주 전 물가반영 기준도 합리화한다. 마지막으로, 시공사가 설계-시공을 함께 수행하는 턴키 사업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될 때, 공사비에 반영이 불명확했던 설계기간(약 1년)의 물가도 원활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정비한다.
☞아직도 발품파세요? AI가 찾아주는 나에게 딱 맞는 아파트
민자 사업 활성화를 위해 공사비 급등기의 물가를 추가 반영하는 물가특례를 12조원 규모 국토부 민자사업 11건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
그밖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오피스 등 비주택 대상 4조원 가량의 PF 지원 방안을 신설하고, 시공사 책임준공에 대한 6조원 규모 보증 가능한 사업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브릿지론에서 본PF 전환 시 대환범위에 금융비용을 추가한다.
내년 1분기 중 소진이 예상되는 신디케이트론 규모를 1조원에서 2조원으로 확대하고 향후 최대 5조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선분양 제한 완화 조치로는 영업정지에 따른 선분양 제한기간을 최대 50%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분양 시기 조정으로 자금 조달 부담이 경감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부실시공 등 주앧한 위법행위로 영업정지 6개월 이상 받은 경우에는 현재 기준을 적용한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선 CR리츠가 출시될 수 있도록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보증 신청 전부터 사업장 위험도 판단 등의 컨설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90조원 이상의 시장안정 프로그램(회사채·CP 매입 등)을 적극 가동하고, 중견 건설사 등에 대한 원활한 회사채 발행 지원을 위한 신규 프로그램도 내년 1분기 내에 마련할 예정이다.
■ “정부 대책만으로 한계…대규모 아파트 싸고 빠르게 짓는 시대 지나”
다만 이 같은 정부의 노력에도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 우려는 짙어질 전망이다. 건설 공사비와 관련한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하면 상승 요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최원철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정부의 제도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그 이유는 우선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안정 리스크가 장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올리면 건설공사 자재비 인상이 불가피하고, 여기에 더해 금리인상 기조마저 계속 유지되는 등 고환율 시대가 지속하는 것도 악재”라고 했다.
이어 최 교수는 “현실적으로 친환경 건축, 중대재해 처벌, 인건비 등의 규제도 공사비를 쉽게 절감할 수 없는 요인에 속하는데, 선진국에서도 위와 같은 비용 부담 때문에 대규모 재건축을 하지 않는다”며 “과거처럼 대규모 아파트를 싸고 빠르게 짓는 시대가 지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이거면 해결된다’ 는 것은 없다”며 “민간부문에서는 ‘편익’이 아닌 ‘사업성’이 핵심이며 공공은 주도적으로 민간시장을 통제하고 이끌어가기보다는 최대한의 지원책을 제시하는 선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