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2009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59㎡(이하 전용면적) 장기전세주택에 당첨된 A씨는 2억원대에 입주했다. 지금까지 쭉 거주했다면 2년마다 전세금이 5%씩 올라도 현재 4억원을 넘지 않는다. 지난달 같은 주택형 전세 실거래가 12억원의 30% 수준이다.
만약 A씨가 대출을 더 많이 받아서 반포자이를 시세 7억7000만원에 매입해 현재까지 거주했다면 수입억원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 단지 해당 주택형은 지난 7월과 9월 30억원에 거래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만약 분양 전환 조건이 있었다고 해도 시세의 80~90% 수준인 20억원 이상이 있어야 ‘내 집’으로 만들 수 있다.
1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프트 주택’ 시즌2로 불리는 일명 ‘미리 내 집’인 장기전세주택2가 장기적으로 부동산 자산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서울 주요 지역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분양 전환 시 아파트 가격 상승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시의 미리 내 집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저출생 극복 대책의 일환으로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다. 오 시장의 재임 1기인 2007년 내놓은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주택)의 후속격 정책이다.
시는 지난 7월 1차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300가구, 8월 2차 광진구 자양동 ‘롯데캐슬 이스트폴’,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문정’ 등 6개 단지 327가구를 공급했다. 1차에 1만7929명, 2차 1만6365명이 몰리는 등 5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12월에는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 성동구 용답동 ‘청계SK뷰’ 등 400여가구 입주자를 모집한다. 또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개발되는 서초구 서리풀지구 일대 2만 가구 중 1만1000가구가 미리 내집으로 공급 예정이다.
미리 내 집은 입주 후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고, 임대 기간을 채우면 시세 대비 최대 20년 저렴한 가격에 분양 전환할 수 있다. 2자녀 출산 가구는 시세 대비 90%, 3자녀 가구는 80% 가격이 분양받을 수 있다.
미리 내 집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10년 공공임대 논란을 재현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른다. 임대 후 분양 전환시 가격이 너무 높게 책정될 가능성 때문이다.
2009년 입주한 10년 공공임대 단지인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봇들마을 3단지’는 2020년 분양 전환 가격은 59㎡ 약 7억원, 84㎡은 8억~9억원이었다. 당시 주변 단지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이지만, 최초 입주 시기보다 아파트 가격이 급등해 분양 전환가도 치솟았다. 분양 전환가의 3분의 1 수준의 보증금에 10년간 임대료를 냈던 입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분양 전환가격을 정하는 감정평가액의 기준은 시세다. 입주와 분양 전환 사이에 10여년의 시차가 있는데, 아파트 가격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여기에 2020년 이후 부동산 가격 폭등기를 지나며 임차인이 느끼는 부담은 가중됐다.
특히 미리 내 집으로 공급하는 서울 주요 지역 대형 아파트 단지의 경우 가격 상승폭이 다른 곳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신혼부부 등 미래 세대를 위한 저렴한 주거 제공이 오히려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1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 주식, 미국 주식, 서울 아파트, 금 등 자산의 연평균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서울 아파트는 8.2%로 2위를 기록했다.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서울 아파트의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2016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59㎡ 장기전세임대주택 입주자 모집 당시 임대보증금은 6억7000만원이었고, 지난해 모집 때는 7억5000만원이었다. 현재 전세 시세 12억원 대비 4억원 이상 낮은 가격이다. 2016년 매매 시세는 약 12억원이었다.
이 단지는 분양 전환 조건이 없다. 그러나 만약 현재 시세인 36억5000만원(2024년 7월)의 80~90% 수준에서 분양 전환이 이뤄진다면 가격은 29억~32억원이다. 임대로 장기간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내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억원이 필요한 것이다. 시프트 주택 입주 대신 갭투자 등을 통해 매매를 했다면 20억원 가량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부자들이 자산을 저장하고, 인플레이션 헤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강남의 아파트를 선택하면서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아파트는 축장자산이다. 안전자산으로 검증된 강남의 아파트를 가치 저장 공간으로 여기는 건 당연하다”며 “부동산 초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부동산 계급 갈등, 젊은 세대 등에게 좌절을 안겨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 땅집고 기자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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