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에서 양재IC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최근 그린벨트 해제 지역인 서리풀 지구로 이동했다.
서울 경계에 있는 양재IC는 경기도에서 서울 강남권에 진입하는 첫 관문이 되는 도로다. 경기 분당, 과천에서 출퇴근시 오가는 차량이 많아 상습 정체지역으로 악명이 높다.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거의 하루 종일 전 도로가 꽉꽉 막힌다. 이 날은 평일이고 오후 2시쯤인 한 낮이었지만, 양재AT센터 앞 도로 전광판에 ‘양재-반포 정체’라는 안내 글이 보였다. 양재IC를 빠져나와 그린벨트가 해제된 지역으로 들어가니 좁은 2차선 도로가 나왔다. 도로 옆은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었다. 앞으로 2만가구 넘는 주택이 들어서면 정체는 더 극심해질 것으로 보였다.
최근 강남 남측 경계인 양재IC일대와 수서동 방면에 대규모 주택 개발 계획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내에는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이 쪽 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교통난과 생활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서울시가 주택 난개발에 앞장선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양재IC 남쪽에 있는 67만평 그린벨트를 풀어 서리풀지구 2만2000가구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이미 양재IC 남측엔 옛 화물터미널 부지에 하림그룹이 용적률 800% 규모로 주거시설 2000가구를 포함한 물류복합단지를 짓는 대형 사업이 예정됐다. 그 맞은 편에는 염곡 공공주택 지구(1000가구)가 계획됐고, 서울은 아니지만 인근 맞붙은 과천 주암지구도 6000가구 규모다. 동쪽 수서동에도 1만2000가구 노후 단지 재건축이 예정됐다. 이 일대에만 약 4만가구 주택 공급이 예정된 셈이다. 강남의 미래 모습이 마치 홍콩 닭장 아파트촌처럼 탈바꿈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 강남, 아파트 천국되나…서리풀지구 등 인근에 3만여 가구
현재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일대와 강남구 수서동에 계획된 주택 물량만 3만7000가구에 이른다. 정부는 지난 5일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인근 그린벨트를 풀어 서리풀 공공주택 지구를 조성한다고 했다. 규모만 2만2000가구다.
서리풀지구는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등 대중교통 노선이 이미 조성된 곳에 들어선다. 기존에 개발된 내곡지구를 둘러싸 내곡지구가 확장되는 것과 다름없다. 양재IC 남단, 서리풀지구 북측에 염곡 공공주택지구(1000가구)도 예정됐다. 서리풀지구에서 동쪽 방면으로 5km 떨어진 거리에 수서동에는 수서택지지구 1만2000가구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재건축 사업을 마치면 개발 계획에 따라 가구 수는 2배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용적률을 250%까지 높일 수 있고, 필요하면 추가적인 상승도 가능하다. 시는 최근 정비사업 등에서 35층 룰을 깨고 용적률을 대폭 완화하는 방침이어서 고밀 개발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에 이 일대로 진입하기 위한 도로 교통 사정은 열악한 상황이다. 경부고속도로 옆 2차선 도로인 청계산로 하나 뿐이었다. 수서동 일대도 동부간선도로 정체가 극심하다고 악명 높다. 공공주택 및 정비사업 개발에 따른 도로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강남 관문 역할을 하는 양재, 수서 도로망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 하림그룹, 양재동에 용적률 800%짜리 주택·물류센터 조성
사기업에 막대한 이익을 퍼주면서까지 주택 수를 늘린다는 비판도 있다. 양재IC방면의 대표적인 개발사업은 하림그룹이 추진하는 양재도시첨단물류센터다.
하림그룹은 2016년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8만6000㎡ 부지를 4525억원에 매입해 물류단지 설립을 추진해왔다. 이 부지는 경부고속도로 양재IC 서남쪽에 위치했으며 현대기아차 본사 서쪽 맞은편에 있는 노른자 땅이다. 서리풀지구 북측에 위치했다.
하림은 이 화물터미널 부지에 용적률 800%를 적용받아 4개 동, 지상 58층 규모 아파트 대단지를 지을 계획이다. 사업비는 약 6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물류센터를 짓는 사업이지만 물류센터는 지하로 빠지고 지상에는 호텔, 백화점, 상가가 들어선다. 물류센터를 제외하고 지상층에 용적률만 800%인 셈이다. 물류센터 지하 8층 규모로 연면적이 55만5474㎡에 이른다.
물류센터를 오가는 화물차에 2000가구 주민이 거주하면 양재IC는 현재보다 더 꽉꽉 막힐 가능성이 크다.
도심 터미널을 물류센터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하림 측에 다양한 용도를 허용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초 시의 지구단위계획상 이 부지는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돼 허용된 용적률을 모두 실현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양재동 하림부지의 경우 그 일대가 도시계획시설 중 유통업무설비 시설만 들어설 수 있도록 지정됐고, 용적률도 최대 400%까지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이 도시첨단물류단지 시범단지로 지정되면서 도첨단지 근거법인 물류시설법에 따라 시 조례로 용적률(800%)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공동주택도 일정 비율로 포함될 수 있었다.
하림그룹은 공공기여를 통해 도로 교통난 해소에 일정 부분 부담금을 낼 예정이다. 사업계획상 하림은 총 4000억원 규모 공공기여를 약속했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에 1000억원의 부담금을 낼 예정이다. 하림은 물류센터부지가 사실상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바뀜에 따라 수조원의 개발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남 등 알짜부지를 고밀 개발해 집을 많이 공급하자는 것이 최근 일종의 트렌드처럼 자리잡았지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그린벨트를 풀어도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격 안정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하며 교통난이나 주거 환경이 더 열악해지는 것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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