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오대산 800m 고지 사과농부가 된 디벨로퍼 "건강과 평생직장은 덤"

뉴스 차학봉 기자
입력 2024.11.08 14:41 수정 2024.11.11 10:35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 사과농부가 된 디벨로퍼 이광수씨의 귀촌생활

[땅집고] 한 겨울이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고 눈이 사람 키만큼 쌓이는 홍천군 내면 명개리. 계곡에 천연기념물 열목어가 헤엄치고 금강송 숲이 울창한 두로령(頭老嶺)으로 유명한 오대산 자락에 과수원 ‘사과창고’가 있다.

5월까지도 함박눈이 내리는 깎아지른 듯한 해발 800미터 산비탈에 ‘8년차 사과농부’이광수(58)씨의 사과나무 1500그루가 자라고 있다. 클래식 음악 들으며 키우는 한우 농가에서 소 똥을 사서 땅심 키우고 사과나무와 수다를 떨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서울에서 부동산개발과 분양회사를 경영하던 디벨로퍼 이씨는 2015년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노래져 방황하던 이씨는 운명처럼 명개리를 만났고 사과를 심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이웃과 보람도 찾았다.

[땅집고] 오대산 자락의 사과농장에서 사과를 수확하고 있는 이광수씨/오대산 사과창고 제공


그는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 “퇴직 걱정 없이 내 땅에서 하나님과 동업할 수 있는 자영업이 농사” 라면서도 “처음엔 ‘한 달 살기, 한 계절 살기’하다가 ‘한해 살이’까지 경험치를 늘려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땅 사고 집 지으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귀농이나 귀촌은 단순한 부동산 투자가 아니라 새로운 내 인생에 대한 투자이다.”

그는 올해부터 오대산 북쪽 사면 해발 800미터에서 금강송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생육한 ‘800고지 골드’를 본격 출하한다. 이씨는 오대산 사과창고 홈페이지(https://www.odsapple.com/)를 통해 농장의 사계절 소식도 전하고 사과 주문도 받는다. 사과농부로 제2의 삶을 사는 이씨를 만났다.

-귀촌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2015년에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암 덩어리의 위치가 코 뒤, 정수리 아래 부분에 있어 수술도 쉽지 않다고 했다. 숨 쉬는 통로를 암이 막고 있었기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답답해서 공기 맑은 곳을 찾아다니곤 했다.

처음엔 앞이 캄캄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암을 이기려면 암 환자로 살지 말고 늘 하던 대로 출근하며 일상을 이어가라고 했다. 하지만 출근해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암 환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안성에 내려가 텃밭을 일구고 나무도 심었다. 내가 죽더라도 내가 심은 나무를 자식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더웠다. 아픈 것보다 한 해 한 해, 날씨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쉬엄쉬엄 일하고 싶었는데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 건지, 지구 온도가 올라간 것인지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도 만만치 않더라. 농사 짓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강원도 홍천에 있는 선배가 은행나무 축제에 놀러 오라고 했다. 10월의 홍천 오대산 단풍이 절경이라는 말에 단풍놀이 삼아 생전 처음으로 ‘홍천군 내면 명개리’라는 곳을 만나게 됐다.”

-지금 농사를 짓는 명개리는 어떤 곳인가?

“홍천군의 동쪽 오대산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겨울엔 영하 2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진다. 계곡에 사는 열목어가 천연기념물이라는 것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오대산 북쪽 산사면 둘레길은 가을부터 봄까지 입산 통제 구역이다. 계곡 물을 자세히 보니 이끼도 하나 없더라. 두로령을 넘어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둘레길도 일품이다.

매일 아침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트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홍천군 내면 명개리의 땅을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땅집고] 한 겨울 눈으로 뒤덮인 이광수씨의 사과농장/오대산 사과창고 제공


-농사는 어떻게 짓게 됐나?

“처음엔 이렇게 일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몸이 안 좋으니까 오며 가며 좋은 공기 마시며 힐링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농막을 들여 놓게 됐다. 마을 어르신들도 청년이 왔다고 환영해주시고 마을 모임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50대에 귀농하신 분들이 많았다.

명개리는 4월 말에 농사를 시작해 10월까지 딱 6개월간 농사를 짓는 곳인데, 산나물이며 고랭지 채소 재배로 농사의 달인들이 적지 않은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맑은 공기는 당연하고 파리도, 모기도 없는 800고지에 여름에도 이불 덮고 잘 정도로 선선한 날씨다. 한겨울에는 동남아 여행 갈 수 있을 만큼 농사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해주시고…그렇게 사과 밭 일을 시작했는데 3년쯤 지나 병원에 갔더니 몸이 훨씬 좋아졌다고 하더라. 5년을 꼬박 고생하면서 치료 받았는데 6개월에 한 번씩 만나자는 의사 말에 날아갈 듯이 기뻤지요. 돌이켜 보면 명개리 맑은 공기와 마을 분들이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

-강원도에서도 사과 농사가 가능한가?

“지금은 돌아가신 이장님이 사과 농사를 지어보라고 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강원도에서도 사과 농사가 가능해졌고 홍천군에서 지역 농산물로 키우기 위해 사과를 선정한다는 얘기도 알려줬다. 지자체 차원에서 귀농 귀촌인을 많이 유치하려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도 해줬다.

충청도 예산이 고향이고, 아내는 청송 사람이다. 예산 사과가 정말 달고 맛있지 않나. 어릴 적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아내는 단단하고 시원한 청송 능금을 보고 자란 사람이라 사과 농사가 익숙하지만 그것 때문에 많이 반대했다.

이제 좀 살 만하니까 아파서 고생한 것을 모두 잊었냐고…사과 농사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어떻게 팔지 생각도 없이 시작한다고 했다. “

-귀농 귀촌이 쉽지는 않다.

“누구나 때가 되면 늙고 병든다. 앞으로 족히 30년은 더 살 것 같은데 퇴직 걱정 없이 내 땅에서 하나님과 동업할 수 있는 자영업이 농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농사도 자영업도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없고 시행착오도 적잖이 겪었다. 친환경, 유기농, 생명역동농법 등 전국에서 농사 좀 짓는다는 농가와 선배님들 찾아가 강의도 듣고 인턴도 하며 열정페이도 받아보고…초보 농삿꾼이라면 한번쯤 다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사과대학 다녔다는데

“사과대학은 약 3년 다녔다. 홍천군에서 개설한 프로그램이다. 전문가들 모셔와서 지자체 공무원들이 깐깐하게 관리도 하고 시험도 보면서 사과 재배 관련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농한기에는 견학 차원에서 홍천 지역외 청송이나 영주, 문경 같은 곳에 가서 과수 농업인들 만나 더 많은 정보를 얻어가며 묘목 선별에서부터 판매 유통의 모든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가장 좋은 점이라면 전국 각지의 농부 선배들과 인간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생기면 전화만으로도 바로바로 진단하고 해결해주는 과외 선생님 같은 형님들이 계셔서 든든하다.

다른 농사도 그렇겠지만 특히 사과농사는 남에게 맡길 수 없다. 1500그루 하나하나 생김새도 다르고 날씨나 환경에 대한 반응도 달라서 봄부터 여름까지 종일 사과나무에 매달려 중얼중얼 거린다. 사과나무 수다라고 하더라.“

[땅집고] 오대산 자락인 명개리에는 5월까지도 눈이 내린다. 중장비를 동원해 사과농장 진입로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오대산 사과창고 제공


-냉장 사과창고를 설치했는가?

“사과는 가을에 추수해서 다음 해 여름까지 유통하는 사실상 1년 내내 파는 과수다. 그렇다 보니 냉장 보관 상태가 정말 중요하다. 적정 온도와 습도를 잘 유지해야 맛있는 사과 맛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저희 농장은 해발 약 800 미터의 고랭지 사과를 재배하기에 최적이지만 5월까지도 함박눈이 내리는 곳이라 동해 및 냉해 피해가 많은 지역이다. 나무도 사과 꽃도 열매 보관도 날씨가 관건이지만 날씨만큼 중요한 것이 토양 만드는 일이다.

땅심이 받쳐줘야 제대로 된 사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클래식 음악 들으며 키우는 한우 농가에서 소 똥을 들여와 퇴비 만드는데 천만 원 넘게 썼다. 여기에 녹비 작물 심어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초보자라서 겪는 시행착오였지만 후회 없다. 물이 잘 빠지면서도 비옥한 토양은 농부의 손을 거치지 않고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3년간 사과 밭 토양을 만들어 사과 나무를 심은 지 올해가 5년째 되는 해이다. 작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확량이 늘었다. 저희 농장 사과를 주문하시는 분들은 설 명절에도 추석에 먹은 사과처럼 달고 시원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땅심이 받쳐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맛을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가려면 냉장 창고가 꼭 필요했습니다.

해발 850미터에 3면이 지하에 묻힌 창고를 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더라. 길이 있더라도 공사 차량이 올라와야 하니까 도로 포장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11월부터 눈이 내리니 도시에서는 6개월이면 끝날 공사를 2년 가까이 끌었다.“

-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농부라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가을 수확철이 기쁨도 있고 보람도 느껴지는 때지만 한편으로는 속앓이를 많이 한다. 1년 내내 잘 큰 사과를 따서 옮기거나 운반할 때 살짝살짝 멍이 드는 일이 생긴다. 밭에서 창고로 창고에서 배송으로 이어지는 수작업 가운데 언제 부딪쳤는지 과피에 크고 작은 흠이 생기면 상품성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비바람 이기며 잘 자라준 사과한테 왜 그렇게 미안하지. 멀쩡한 사과를 파치로 분리해 놓고도 오며가며 내내 그 놈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동네분들이나 네이버검색으로 갑자기 찾아오는 분들은 그런 사과가 가장 좋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위로하신다.

맛 좋은 사과에 덤도 듬뿍 받을 수 있다며 농장 단골 손님이 되기도 한다. 파치만 찾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해서 한분 두분 사과창고에 마실 삼아 놀러오기도 하고 서울에서 자식들이 내려오면 아이들 데리고 나보다 더 자랑하시며 소풍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주변 주민과의 교류, 도움, 지역 커뮤니티는 어떤가?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잘 모르잖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공손히 인사부터 했다. 60여 가구 110명 정도가 사는 곳이다.

한여름에는 일하기 바빠서 만나기 어렵고 겨울에는 눈 때문에 통행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정지역으로 소문이 나서 지난 2011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됐다고 해요.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힐링 치유지로 알려지면서 템플스테이처럼 마을회관 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다 보니 원주민이든 귀농 귀촌자든 상관없이 젊은이들(주로 50~60대)이 열심을 참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형님 동생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 서울에서 귀농하신 분은 많은지?

“귀촌, 귀농가구(이주 10년 이내 가구)가 절반 정도니까 높은 편에 속한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 주변으로 매년 새 집이 지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대산 계곡물이 저처럼 많은 분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농사 지을 땅이 많지 않아요. 산악 지형이니까요. 여기 분들은 워낙 농사의 달인이라 급경사 밭에 배추, 고추, 감자, 호박 농사를 정말 잘 하세요. 현실적으로는 귀농보다 4도 3촌형의 주말형 귀촌자가 아직은 대세인 것 같다. “

-은퇴 후 귀농하려고 하는 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농사일은 정말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저는 도시를 떠나 조금이라도 젊을 때 귀농에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농사는 노동입니다. 노동에도 나름 맛이 있고, 더 나이 들면 이 기회마저 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한 달 살기, 한 계절 살기’하다가 ‘한해 살이’까지 경험치를 늘려보는 것. 지자체를 통해 귀촌귀농 교육을 받아보는 것은 필수 코스라고 생각한다.

땅 사고 집 지으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귀농이나 귀촌은 단순한 부동산 투자가 아니라 새로운 내 인생에 대한 투자다. 사는 것은 물론이고 일하는 환경 여건까지 골고루 경험한 다음에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대산사과창고의 대표 사과인 ‘800고지 골드’자랑을 해달라?

“황금빛 사과라고 불리는 시나노골드 품종이다. 2019년 식재하여 홍천군 내면 명개리 오대산 북쪽 사면 해발 820~840미터의 금강송 서늘한 바람 사이에서 생육한 사과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과의 최적 재배 날씨는 연평균 기온이 8~11도, 강수량 1,300mm이하, 일조량 2300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오대산 사과창고는 열대야가 단 하루도 없이 연평균 일교차가 15도를 넘을 정도로 사과 생육의 최적 날씨이다. 고랭지 사과의 달콤새콤한 맛이 제대로 올랐을 때(매년 10월 말~11월 초) 비로소 수확, 가장 맛있을 때 출하하고 있다.“

-800고지 골드 사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요즘과 같은 가을에 맛있게 먹고 싶다면 하루 이틀 상온에서 후숙한 뒤 껍질째 먹어야 펙틴과 케이세틴을 다량 섭취할 수 있다. 세척은 먹기 직전에 하는 것이 좋다. 다른 과일과 분리하여 0~4도의 서늘한 곳에 신문지에 싸서 보관하시면 겨울은 물론 봄에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사과껍질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다.

예약 주문으로 오대산사과창고에 보관을 요청해도 좋다. 오대산사과창고는 항온 1~1.5도, 항습 92~96%로 배송 전까지 언제나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한겨울에도, 꽃 피는 봄에도 계속해서 새콤달콤한 사과를 맛볼 수 있다. ”

-앞으로 계획은?

“현재까지는 과육이 풍부하고 시원한 맛이 오래 가는 시나노골드가 가장 인기 품종이다. 향후에는 어릴 적 사과로 기억되는 ‘어린이 한입 사과’를 재배하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과일 먹으라고 권하기 보다 어릴 적 먹은 사과, 그 맛 그대로 땅심으로 키워내는 ‘건강한 어린이 사과’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차학봉 땅집고 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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