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청년안심주택이라더니, 당첨자들에게 계약 전 집을 확인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월세가 저렴하다지만 청년들 입장에선 큰 돈인데, 집을 보기도 전에 계약금부터 보내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강매 아닌가요?”
올해 8월 완공한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리스트 안암’. 지하 2층~지상 18층, 총 299가구 규모로 민간 부동산 임대사업자인 ‘브이인마크청년주택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가 서울시 지원을 받아 건설한 청년안심주택이다. 이 중 공공임대 129가구는 지난 4월 공급하고, 민간임대 170가구에 대한 청년·신혼부부 입주자를 10월 한 달 동안 모집했다.
‘리스트 안암’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원룸형인 전용 18㎡ 기준 임대료가 보증금 3800만원에 월세 43만원으로 책정됐다.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과 가까운 역세권 입지인데도 시세 대비 20% 저렴한 금액이다.
월세를 아끼려 이 단지에 청약, 예비당첨된 A씨(31)는 앞 순위 청년들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입주할 기회를 얻었다. 지난 10월 28일 문자메시지로 당첨 소식을 알게 됐는데, 계약일이 불과 2일 후인 30일이라 서둘러 방문 약속을 잡자고 임대사업자에게 연락했다. 월세가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점이 좋긴 했지만, 일단 집을 직접 둘러본 다음에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입주자모집공고문에도 ‘본 주택은 계약 체결 전 당첨자들에 한해 당첨 호실을 공개할 예정이다’란 문구가 적혀있기도 했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입주까지 일정이 너무 촉박해 예비당첨자들에게는 집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말 뿐이었다. 황당한 A씨가 “청년안심주택이라면서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라는 것이냐”고 따지자, 담당자는 “원래 민간임대주택은 다들 그렇다”면서 “일단 계약금을 입금한 뒤 전자계약까지 체결하면 주택을 둘러볼 기회를 주겠다”고 안내했다.
A씨가 이 경험을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 공유하자 비슷한 일을 겪은 청년들의 공감 댓글이 쏟아졌다. 청년안심주택이 주변 시세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하긴 하지만, 엄연한 부동산 거래인데도 실물을 보지도 못하고 계약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강매나 다름 없게 느껴진다는 것.
실제로 댓글창에선 “나도 찾아봤는데, 청년안심주택 대부분이 이렇게 하나보더라. 특히 신축이면 방을 못보고 계약하는 경우도 많다”, “계약금을 먼저 내야 계약서를 보여준다는 말도 들었는데 순서가 완전 반대다. 더군다나 계약 전 방도 못보게 하면서”, “최소한 내부 사진이나 영상이라도 공유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의견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년들에게 집을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단 계약부터 체결하도록 재촉하는 민간 임대사업자를 서울시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제지해줘야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애초에 청년안심주택이 서울시가 2019년 도입한 제도기 때문이다. 민간사업자가 청년안심주택을 지으면서 서울시로부터 용적률 상향, 이자 등 금융지원, 심의·인허가 기간 단축 등 각종 혜택을 받아낸 뒤 임대 수익을 올리는 점을 고려하면, 준공 후 주택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권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SH 모두 청년안심주택단지 내 민간임대주택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청년안심주택 사업 담당 부서인 전략주택공급과 관계자는 “청년안심주택 실물을 반드시 보여준 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조항이나 규정은 없다”면서 “일반적으로 부동산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주택을 둘러보게 해주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사인 간의 계약인 만큼 강요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SH 역시 청년안심주택에 당첨된 한 청년에게 “상황은 안타깝지만 민간 계약에 대해서 SH가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서울시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공급한 청년안심주택 총 1만5634가구 중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1만2223가구로 78%를 차지한다. 올해에도 총 7777가구 중 72%에 달하는 5596가구가 민간임대주택으로 집계됐다. 앞으로 서울시는 청년안심주택 공급량을 꾸준히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청년안심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주거 복지를 위해서는 청년들이 수요자로서 주택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뒤 계약을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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