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강동구 뒤흔든 연쇄 전세사기사건 범인 잡고보니 2002년생 현역 군인

뉴스 이승우 기자
입력 2024.10.17 14:41 수정 2024.10.17 18:07
[땅집고] 지난 6월 서울 신촌 대학가 일대에서 열린 '신촌·구로·병점 100억원대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땅집고] 지난 8월 30일 서울 강동구의 한 오피스텔 소유주 A씨는 신규 임차인 B씨에게서 전세 보증금 잔금을 입금받은 뒤 퇴거를 준비 중인 기존 임차인 C씨에게 반환할 예정이었다. A씨는 은행에 직접 방문해 돈을 송금하겠다는 연락만 남기고 보증금을 가로채 잠적했다.

임차인들과 전세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즉시 경찰서에 A씨를 신고했다. 경찰서에 방문했을 때 같은 유형의 사기 사건이 이날만 4건이 접수됐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서울 강동구에서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받아 기존 임차인에게 반환하지 않고 가로챈 뒤 잠적하는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임대인의 의도적인 범행에 애꿎은 임차인들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임대차 계약에서 임차인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서 비롯된 문제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인 A씨가 애초에 보증금을 가로챌 계획을 세우고 다른 사건들도 잔금일을 똑 같은 날로 맞췄다”며 “보통 주로 거래하는 부동산 몇 군데에 자기 물건들 여러 개 맡기는데, A씨는 1개씩 분산해놓았다. 부동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까지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에 따르면, 계약과정에서 임대인 A씨에게 신분증, 주민등록증, 국세, 지방세 체납증명서 등 필요 서류를 요구해 제출받았다. 서류를 검토하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맺었고, 신규 임차인은 계약금영수증을 발급받아 임대차신고, 확정일자 부여, 전세대출심사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A씨가 보증금을 가로채자 기존 임차인은 퇴거할 수 없고, 신규 임차인은 입주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특히 계약상 효력이 퇴거하지 않은 기존 임차인에게 있어서 신규 임차인들은 전세보증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A씨는 17일 인천에서 체포됐다. 2002년생 남성인 그는 현역 군인으로 경찰은 군의 협조를 받아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범행 경위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기에 경찰이 전세사기가 아닌 일반 금전 사기사건으로 분류해 추후 임차인들을 구제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을 전망이다.

조직적인 사기의 정황도 있다. A씨는 충남 천안시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중개업소와 임차인들에게 자신을 부모의 자금 지원을 받아 서울의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같은 날 구로구에서도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기 행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퍼졌다.

최근 강동구의 공인중개사 커뮤니티에서는 제3의 인물이 A씨처럼 다수의 부동산을 매입한 뒤 임차인을 구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지방 거주, 다수 물건 소유, 잔금일 통일 등 여러 조건에서 의심의 정황이 있다. 잔금일은 11월 중순으로 아직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중개업소들은 언제 추가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긴장하고 있다.

/챗GPT 활용



피해 임차인들은 대부분 20~30대의 청년층이다. 그 외 전세사기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7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된 1만9621건 20대 25.39%(4982건), 30대 48.23%(9464건) 등 40세 미만 청년층이 73.64%로 가장 많았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 등 임대차계약 관련 사건은 임대인이 임차인보다 우위에 있는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며 “이번 사건은 극단적인 예시다. 피해자들이 청년층이다보니 피해가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고 평가했다. 임차인이 계약을 맺기 전 매물을 검증하거나 임대인에 구속력을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를 입은 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받으면, 기존 임차인에게 직접 송금해야하는 구조다. 마음먹고 사기를 치겠다고 하면 손쓸 도리가 없다”라며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은행 가상계좌를 통해 보증금을 주고받아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응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부는 2023년 4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선순위 보증금 등에 대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했다. 그러나 임대인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이승우 땅집고 기자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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