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안녕하세요? 송파구에 사신다니 반갑네요. 저는 강동구에 살아요. 멀어도 괜찮습니다. 제가 또 운전을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모씨(59)는 매일 오후 7시50분이 되면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진다. 오후 8시가 되면 어김없이 낯선 여성과 딱 8분간 앱(APP)으로 채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다.
김씨가 기다린 건 바로 5070 라이프 플랫폼 ‘시럽’이 내놓은 미팅 서비스 ‘88다방’. 매일 오후 8시면 모르는 이성과 대화방을 만들어 8분간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8분이 지난후 대화를 이어가려면 2500원을 내면된다.
김씨는 “20년 전 부터 홀로 키웠던 두 아들이 줄줄이 혼사를 치르면서 집에 오면 적막함을 느꼈는데, 이성과 채팅을 하면서 수십년 전 설렘을 다시 느낀다”고 했다.
국내에서 시니어를 겨냥한 데이팅 앱이 출시 두달여(2024년 8월 출시)만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하고 활력있는 노후를 보내려는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들이 온라인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시니어 데이팅 앱이 활성화돼 있다.
■ ‘취미 같은 50대 만날래요’…데이팅 앱, 어떻게 생겼나
시럽은 5070 대상 취미·여가 모임 앱 ‘시놀’의 파생 서비스로, 지난 8월 출시됐다. 시놀과 시럽은 각 ‘시니어놀이터’와 ‘시니어러브’ 줄임말이다. 시놀 사용자 중 상당수가 ‘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남겼던 것에 착안했다.
시럽은 50대 이상 미혼이라면 누구나 가입 가능하다. 사진 첨부 후 닉네임을 정하고 지역과 직업, 결혼 여부와 자녀 유무 등을 입력하면 된다. ‘고양이상’ ‘공감 잘해요’ 등 자신의 외모 및 성격 관련 키워드를 입력할 수도 있다.
시럽은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지역이나 취미가 같은 이성을 매일 4명 추천한다. 추천 이성이 마음에 들면 별점 5점을 남길 수 있다. 이성으로부터 별점 5점을 받은 사용자에게는 ‘당신에게 관심있는 사람이 있습니다’는 메시지가 뜬다. 만약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2500원을 내고 온라인 편지를 쓰면 된다.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도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 ‘8분 너무 짧네~’…외로움 느끼는 8시에 대화했더니
시럽을 만든 김민지 시놀 대표는 “오후 8시는 시럽이 가장 활성화되는 시간”이라며 “많은 액티브 시니어들이 퇴근, 저녁 식사 후 자기 전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사용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에 쓰는 시간이 8~10분인 점, 5070세대가 ‘구구팔팔(9988·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 등 반복되는 단어를 많이 쓰는 점에 착안해 ‘88다방’이라는 붙였다”고 했다.
88다방 사용자 10명 중 3명이 비용을 내고 온라인 편지를 발송한다. 김 대표는 “이성 4명을 추천받았을 때 보다, 대화를 나눈 후 온라인 편지 비용을 결제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반적인 연결 성공률이 올라갔다”고 했다.
■ ‘시럽’ 인기 이유, 저렴한 비용과 가벼운 만남
시럽의 인기 비결은 저렴한 비용이다. 상대방과 채팅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2500원이다. 가볍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시럽의 장점이다. 결혼 경험이 있는 5070세대라면 재혼보다 가벼운 만남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재혼 후 사망할 경우 유산을 둘러싸고 생존 배우자와 자녀 간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김 대표는 “시럽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이성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며 “수백만원을 내고 선을 보는 결혼정보회사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고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시럽”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앱 출시 기간이 짧은 만큼, 현재는 사용자 만족도 유지와 추가 사용자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연결 성공률이 더욱 올리기 위해 나중에는 가까운 지역에 있는 이성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 외국서도 데이팅앱 시니어들에 인기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시럽에 대해 신선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최근 종편 예능 프로그램 ‘끝사랑’이 인기를 끌 듯, 시럽은 우리 사회가 중년의 연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외국도 5070세대도 데이팅앱이 인기이다. 2012년 미국에서 등장한 위치 기반 글로벌 데이팅앱 틴더(Tinder)를 비롯해 매치(Match), 범블(Bumble)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한 여론조사기관이 2022년 7월 미국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성 교제를 위한 온라인 사용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64세의 경우 5명 중 1명이 데이팅앱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김 대표는 “황혼이혼·사별로 인해 혼자가 된 이들 뿐 아니라, 많은 5070세대가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을 찾는 추세”라며 “시놀과 시럽은 이런 수요를 적절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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