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집값 오르자 외지 부동산 집중 타깃된 평창동 단독주택
‘호가 뻥튀기’가 시세로 고착화
현지에선 “이효리·이상순 부부도 피해자”
[땅집고] “평창동에서 매물만 나왔다 하면 용산이나 강남 소재 부동산에서 귀신같이 알고 집주인한테 연락해요. 전속중개 제안만 받아들이면 내놓은 가격보다 수억씩 더 비싸게 팔아준다고 하는데 거절할 사람이 어딨겠어요.” (평창동 인근 A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서울 종로구 평창동·구기동 일대에서 타지역 중개업소에서 체결한 거래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물을 뺏긴 현지 공인중개업자의 볼멘소리로 읽힐 수 있지만, ‘시세 교란’ 행위로 이어져 실수요자 피해도 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11년간 제주살이를 마치고 평창동 주택을 매입한 가수 이효리·이상순 씨도 피해자라고 입을 모은다. 이씨 부부는 평창동 2층짜리 단독주택(연면적 515.25㎡)과 인접 필지(연면적 329㎡)를 60억500만원에 샀다. 이씨 부부가 매매거래를 체결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소재지는 ‘서울 용산구’다. 평창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효리·이상순 부부도 시세보다 15억가량 비싸게 매입했다”며 “아파트처럼 적정 시세가 없는 단독·다가구 주택들이 외지 중개업소의 ‘호가 올리기’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씨 부부가 매입한 단독주택 평당 가격은 2200만원 수준이다. 지난 2년간 이씨 부부가 매입한 부지에서 500m 이내에서 거래된 토지 단가는 1200만원에서 1900만원 선이다. 최근 10년간 평창동 주거지역 평균 평당 가격이 15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씨 부부 매입가는 평당 700만원 높은 금액이다.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토지와 건물 가격을 단순 계산으로 보수적으로 잡아도 10억 이상 비싸게 매입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씨 부부를 비롯해 평창동에서 이뤄진 전체 부동산 거래 중 절반 이상이 평창동이 속한 종로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체결됐다.
2023년 기준으로 평창동 전체 단독·다가구 거래 18건 중 종로구에서 진행된 거래는 7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11건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 등에서 거래됐다. 60% 이상이 외지 부동산 거래다.
용산·강남 일대 부동산 관계자는 평창동 단독주택 매물이 뜨면 직접 집주인을 찾아가 당초 내놓은 가격보다 수억원 더 높은 가격에 거래해주겠다며 전속 중개를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매물이 최초 제시가보다 수억원씩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완만한 우상향 추이를 보이던 평창동 일대 실거래가가 치솟는 사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타지역 공인중개업소의 영업 행위가 불법은 아니다. 다만 부동산 상승기에 적정 시세가 없는 지역 매물이 ‘호가 상승→시세 정착’으로 굳어지는 시장 왜곡 현상이 나타난다. 평창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이상 거래가 시세로 고착되더니, 지금은 평당 3000만원에도 거래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집주인이 최초 제시한 가격보다 수억원씩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평창동 지역 특성상 단독주택이 밀집했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비교해 매물이 많지 않은데다 실거래가 많지 않아 시세 판정이 쉽지 않다. 별도의 감정평가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매수인이나 매도인 모두 중개인에게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매수인뿐만 아니라 일부 매도인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매수 희망자가 나타났지만 부동산에서 가격을 뻥튀기하는 바람에 수년째 팔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도 빈번하다. 평창동 일대 부동산 상품 특성상 대기 수요가 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창동에 거주 중인 이모씨(62)는 “타 지역 부동산이 제시한 가격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부동산 말만 믿고 시세보다 훨씬 높게 내놨다가 수년째 거래되지 못한 채 방치된 건물이 많다”고 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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