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붇이슈]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위원
최근 수도권 집값 과열은 인플레이션 반영
원자재·인건비 폭등이 결국 아파트 가격에 반영돼
[땅집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에 따른 보상 행위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누적되어 있다가 상승기에 집값을 확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 오름세는 인플레이션 후폭풍의 결과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부동산 가격 상승과 물가 상승간 상관관계에 대한 기고문을 게재했다. 명목 주택 가격이 외부 요인, 공급 문제로 갑작스럽게 변할 수 있지만, 물가 상승 혹은 하락의 흐름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박 위원은 “최근 원자재를 비롯한 물가 급등은 결국 시차를 두고 실물자산인 부동산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라며 “부동산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따른 보상 행위”라고 평가했다. 이어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면 디플레이션이 나타나 부동산 가격도 하락한다. 부동산 가격이 곧 물가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부동산은 대박도 쪽박도 아닌 평범한 상품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은 물가가 부동산 가격에 즉각 반영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누적되어 있다가 상승기에 집값을 확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요즘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 오름세는 인플레이션 후폭풍의 결과”라고 밝혔다.
박 위원은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고, 공급가격 혁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요동치는 아파트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공급을 확대하면서 수요가 한꺼번에 쏠리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공급자 쪽에서 원가 절감형 건축 자재와 혁신기법을 개발하는 등 건축비를 낮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하 원문>
평소 잘 알고 지내는 A씨가 서울 강남권에 사옥을 짓더니 최근 완공했다. 연면적 264.46㎡(80평)의 미니 빌딩이다. 공사비가 얼마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12억원이라고 했다.
3.3㎡(평)당으로 따져보니 1500만원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랬더니 모퉁이에 경사진 땅이라 공사하는데 비용이 좀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비싸다.
요새 원자재값이나 인건비 급등으로 건축비가 껑충 뛰었다. 5~6년 사이 곱절 이상 오른 것이다. 한 건축가는 도심에 오피스텔을 지으려고 해도 평당 1200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이제 서울에선 아파트 공사비가 평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곳이 생겨났다.
또 다른 지인 B씨의 얘기다. 그는 은퇴 이후 거주할 생각으로 10년 전 강원도에 단독주택을 지었다. 당시 평당 가격은 350만원. 그런데 최근 대출받을 일이 생겨 감정평가를 받아보니 450만원이 나왔다. 그는 단독주택도 지으려면 평당 700만원 가량 소요되다 보니 감가상각을 무시하고 이런 감정평가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건축비가 많이 오르다 보니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도 일어난다.
어찌 보면 부동산도 물가 문제다. 네덜란드의 운하 도시 암스테르담에는 1625년에 지은 헤렌흐라흐트(Herengracht)라는 오래된 마을이 있다. 이곳에 대리석으로 지은 고풍스러운 집들은 그동안 개보수를 거쳐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약 390년간의 헤렌흐라흐트 주택지수가 주택학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헤렌흐라흐트지수는 1629년부터 1972년까지 명목 주택 가격으로 20배 올랐다.
그러나 실질 주택 가격으로 따지면 상승폭이 거의 없다. 3년 뒤인 1632년을 기점으로 1972년까지 실질 주택 가격으로 볼 때 상승률은 제로다. 실질 주택 가격은 물가를 포함한 명목 주택 가격과는 달리 물가를 뺀 가격을 말한다.
아주 긴 시계열을 보면 명목 부동산 가격은 물가만큼 오른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주택 가격은 올라봐야 물가상승률 이상 오르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주택연금이나 공유형 모기지론은 명목 주택 가격이 적어도 오른다는 가정하에 상품이 만들어졌다.
명목 주택 가격은 외부 쇼크나 공급 과잉으로 일시적으로 폭락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면 그 주택 가격은 다시 평균회귀 현상으로 회복세를 보인다.
최근 원자재를 비롯한 물가 급등은 결국 시차를 두고 실물자산인 부동산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가가 오르면 라면이나 운동화 값이 덩달아 오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따른 보상 행위다. 부동산이 물가 상승에 대한 헷지 기능이 있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이나 건물을 여러 채 가진 사람에게 보유 3년부터 양도 차익의 연간 2%씩 최대 15년간 30%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해주는 것도 물가보상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물가가 오른 만큼 주택이나 건물의 실질가치가 떨어지는 점을 고려해 매각할 때 양도세를 공제해주는 것이다.
반대로 물가가 떨어지면 디플레이션이 나타나 부동산 가격도 하락한다. 부동산 가격이 곧 물가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부동산은 대박도 쪽박도 아닌 평범한 상품이 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는 물가 상승이 집값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점차 회복 사이클로 접어들 때 한꺼번에 반영된다. 요컨대 인플레이션 압력은 침체기에 누적되어 있다가 상승기에 집값을 확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이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연속적이기보다는 단속적 혹은 불연속적이다.
요즘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가격 오름세는 인플레이션 후폭풍의 결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동치는 아파트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공급을 확대하면서 수요가 한꺼번에 쏠리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허나 이런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공급자쪽에서 원가 절감형 건축 자재와 혁신기법을 개발하는 등 건축비를 낮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공급발 인플레이션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밀가루값이 안정되어야 빵값도 안정된다는 논리다. /이승우 땅집고 기자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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