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삼일천하로 끝난 이복현의 대출규제 드라이브.. 집값 더 오르나

뉴스 차학봉 기자
입력 2024.09.10 17:43 수정 2024.10.07 16:23

[땅집고] ‘집값을 잡겠다’며 전세 대출 시장까지 사정없이 조였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사죄했다.

이 원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를 통해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과 이로 인해 국민, 은행 직원들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감독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최소한의 기준이며 은행이 각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가계대출 취급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이 원장이 주도했던 집값을 잡기 위한 대출 규제 드라이브는 사실상 ‘삼일천하’로 끝났다. 버블파이터를 자임하던 이 감독원장은 결국 ‘서민 괴롭히는 선무당’이라는 비판에 굴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하반기 주택시장의 최대 변수였던 대출규제 정책의 후퇴가 불가피해졌고, 주택 시장은 다시 한번 꿈틀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지난 2~3개월간 가계부채가 정부의 관리 범위보다 늘어난 건 사실. 최근에는 부동산, 특히 수도권 아파트 구입 목적 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언했다.

버블파이터를 자처한 이 원장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시중은행들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중단, 1주택자 주택담보대출 중단, 신용대출 제한 등 집값을 잡기 위한 고강도 대출 규제에 나섰다. 전세대출까지 규제하면서 실수요자조차 대출을 받지 못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위원장, 국토부, 기획재정부 부총리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금융 부동산 정책을 좌우하는 월권을 저지른다는 비판도 나왔다.

[땅집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괸에서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이 원장 사과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금융, 부동산 정책 문외한인 이 원장의 관치금융을 통한 대출 규제는 집값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격다짐식으로 밀어부였다. 그는 “갭(GAP) 투자 등 투기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민 실수요자만 빼고 투기세력만을 ‘족집게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전세수요까지 막는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대출 규제 정책은 한발 후퇴했다.

■ 궁예 ‘관심법’도 불가능한 수요 구분

통상 부동산업계가 말하는 ‘실수요’는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다주택자의 주택 구입은 ‘투기수요’라고 보는 경향이 짙다.

이 과정에서 1주택 보유자의 갈아타기 수요가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실수요이나, 집값 상승을 노린 가수요에 해당할 수도 있다.

무주택자가 차익을 목적으로 무리하게 비싼 주택을 구입할 경우 역시 애매하다.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전세대출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남이 하면 가수요, 본인이 하면 실수요’라는 말도 나왔다.

그렇다면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은 실수요이므로 선하다고 봐야 할까. 한국은 보금자리론, 신혼부부 디딤돌 대출 등 젊은 층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저금리 대출 정책을 연달아 내놨다. 외국에서도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에 대해서는 세제, 금리 혜택을 주는 경우가 많다.

/조선DB


서울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것은 저금리 정책과 공급 절벽으로 인한 불안감 조성, 금리 인하 기대감 등이 맞물려 나타난 결과다.

집값을 낮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대출 규제다. 다만, 대출만 규제하면 실수요자들의 아우성이 터진다. 이는 정치권 부담으로도 연결된다.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대출 총량규제 등 강한 대출 규제로 인해 주택 시장이 심각하게 흔들린 적이 있다. 대개 선진국에서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출만 과하게 억제하지 않는다.

‘대출을 통제해 집값을 잡겠다’는 국가는 한국, 중국이 있다. 쌍두마차다. 일본은 1990년대 대출 총량 규제를 가했다가, 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붕괴했고, 집값 과열에 국가가 먼저 반응하는 독특한 나라가 됐다.

■ 버블파이터에서 선무당 전락? 이복현의 묘수는?

이 원장의 이 같은 갈팡질팡 행보는 2021년 고승범 금용위원장과 겹쳐 보인다.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집값을 잡겠다며 대출 규제 밀어붙였다. 그는 “집값 상승률 세계 3위, 버블 차단 위해 대출 규제가 불가피하다"면서 전세 대출까지 일부 틀어막았다. 그러자 서민 잡는 금융위원장이라는 비판이 여야 정치권에서 터져 나왔다. 결국 대통령까지 개입 “실수요자의 피해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고 위원장은 대통령 지시로 “실수요자를 고려해 전세대출과 (중도금) 집단대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그가 백기 투항했다고 해석했지만, 풍부한 경험의 금융관료출신인 고 위원장은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계 대출을 줄이는 ‘묘수’로 우회 돌파구를 찾았다. 전세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대출 한도를 ‘전세금 증액 금액 범위 내’로 축소하는 등 우회로를 찾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고승범식 묘수를 찾기에는 금융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마구잡이 대출 규제로 서민들만 괴롭히는 선무당으로 남을 것인가? 고승범 위원장처럼 묘수를 찾아내 돌파구를 여는 버블 파이터의 면모를 보여줄 것인가? 이복현 원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차학봉 땅집고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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