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금융대통령 이복현, '서민 잡는 선무당'일까, '집값 잡는 버블파이터'일까

뉴스 차학봉기자
입력 2024.09.06 09:40 수정 2024.09.06 13:37

[땅집고] “갭투자 등 투기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달라”

[땅집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에서 열린 '가계대출 실수요자 및 전문가 현장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앞다퉈 내놓은 가계대출 억제 조치를 두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현장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에서 실수요와 투기적 가수요 구분이 가능할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감사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은 부동산 시장을 좌우하는 절대권력자가 됐다. 일부에서는 금융 대통령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가수요와 실수요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궁예의 관심법으로도 구분이 잘되지 않는 것이 가수요와 실수요의 구분일 것이다.

[땅집고] 관심법으로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주장한 궁예, 사진은 드라마 왕건./KBS


■ 궁예의 관심법도 불가능한 실수요, 가수요 구분

흔히들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은 실수요, 다주택자의 주택구입은 투기수요라고 본다. 그런데 1주택자의 갈아타기 수요는 뭐로 볼 것인가가 문제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실수요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집값 상승을 노린 가수요일 수도 있다.

무주택자가 재테크를 목적으로 자신의 소득 범위를 뛰어넘어 무리하게 비싼 주택을 구입할 경우, 이를 실수요로 볼 지, 가수요로 볼 지 애매하다. “남이 하면 가수요, 본인이 하면 실수요”라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그런데,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은 실수요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까. 한국도 보금자리론, 신혼부부 디딤돌 대출 등 첫 내집마련을 돕기 위한 저금리 대출을 해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 외국도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에 대해서는 세제혜택과 금리 혜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 무주택자들이 폭등시킨 집값

그런데 무주택자들이 우르르 몰려가 내 집을 사면 집값이 치솟기는 마찬가지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의 주요 도시의 집값이 지난 3년간 172% 상승했다고 영국의 경제 전문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전쟁 중인 국가에서 집값 폭등이라는 이상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덕분이다. 우리로 치면 무주택자 첫 내집마련 저리 대출이 인기를 끌면서 주택시장에 불을 붙였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정부의 보조금이 주택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폴란드도 올 1분기 주택 가격이 전년 대비 18% 폭등했다. 작년 4분기에도 연간 13% 올랐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최대 30%까지 폭등했다. 현재 폴란드의 기준금리는 5.75%로, 2020년에는 기준금리가 1.5%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금리 상황이다. 그런데도 폴란드 집값이 폭등한 이유는 뭘까. 바로 작년 7월 도입한 2% 고정 금리의 ‘안전한 대출(Safe Credit)’이 집값 폭등의 도화선이 됐다.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처음 10년 동안 2%의 고정 이자율을 유지하도록 보장했다. 1인 가구는 1억7500만원, 결혼한 부부는 2억1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폴란드의 고정금리 대출이 최고 8.46%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폴란드 정부는 시중 금리와 이자 차익은 재정으로 지원한다.

■ 집값 폭락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

서울 집값 과열의 원인은 저금리 정책금리, 공급 절벽 불안, 금리인하 기대감 등 복합적이다. 그런데 집값을 폭락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주택자들이 담합해서 집을 사지 않는 것이다. 담합이 성공한다면 무주택자들이 주로 사는 중저가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중저가주택의 고가주택 갈아타기 수요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 이런 담합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나는 집을 사지 않는데, 다른 무주택자가 집을 사서 집값을 폭등시켜 놓으면 나만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일종의 수인의 딜레마이다. 다만 집값 폭락기는 집값이 하락할 것을 믿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집을 매수하지 않는 담합이 형성된다. 그게 시장경제이다.

/조선DB


정부 개입으로 가능한 담합이 대출 규제이다. 대출을 강하게 조이기 시작하면 무주택자의 주택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만 무조건 대출을 규제할 경우, 실수요자들의 아우성이 터지는 등 정치적 부담이 된다. 대출 총량규제와 같은 너무 강한 대출 규제는 일본, 중국에서 볼 수 있듯이 주택시장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성이 있다. 보통의 선진국에서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출을 무지막지하게 조이지 않는다. 대출통제로 집값을 잡겠다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이 쌍두마차이다. 일본은 1990년대 대출 총량규제로 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장기 붕괴하면서 집값 과열에 국가가 열광하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보통의 나라들은 집값이 올라도 무주택자들이 주택을 쉽게 살 수 있도록 모기지제도를 정비하고 세제혜택을 강화한다. 주택정책의 목표가 집값 안정이 아니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부장관, 기획재정부 부총리를 제치고 ‘부동산 정책 수장’, ‘금융대통령’으로 떠오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부작용이 없이 집값만 잡는 그런 묘책을 발휘, 집값 잡은 버블 파이터가 될 수 있을까. 마구잡이 대출규제로 서민들만 괴롭히는 선무당으로 전락할까. /차학봉 땅집고기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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