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르엘’ 아파트 일반분양가가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 중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후분양을 통해 분상제의 벽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뿐 아니라 향후 다른 강남권 아파트 분양가와 시세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청담삼익을 재건축하는 청담동 ‘청담르엘’의 일반분양가가 3.3㎡(1평)당 7209만원으로 확정됐다. 분상제 적용 단지 중 역대 최고 금액으로 지난달 분양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의 3.3㎡당 6736만원을 뛰어넘었다.
청담르엘의 일반분양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파장은 부동산 시장 전반에 미칠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분상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강남구 분양 단지 중 일반분양가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분상제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분양할 때 일정한 기준으로 산정한 분양가격 이하로만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공택지에만 적용하다가 2020년부터 민간택지 아파트도 대상이 됐다.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등이 적용 지역이다.
■ 분상제 무력화하는 후분양…“청담르엘 3000만원가량 오른 셈”
업계에서는 청담르엘은 후분양으로 분상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고 평가한다. 착공 시점에 이뤄지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아파트가 60% 이상 지어진 후 진행한다. 후분양을 선택하면 건축기간 공시지가 상승분, 금융비용 등을 분양가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
청담르엘은 2021년 12월 착공해 2025년 11월 입주 예정이다. 2020년 분양한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의 일반분양가는 3.3㎡당 4750만원이었다. 이 단지 역시 분상제를 적용했으나, 선분양했다. 청담르엘은 후분양을 통해 일반분양가를 2000만~3000만원 가까이 올린 셈이다.
정비업계 일부에서는 조합 측이 일반분양가를 높이기 위해 일반분양을 지연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5월 일반분양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을 협의한 집행부가 교체되어 일정이 1년 이상 밀렸다. 지난 6월에는 공사비 갈등으로 공사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다.
조합 측은 이달 들어 강남구청에서 두차례 진행한 일반분양가 심사에서 3.3㎡당 7000만원선을 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13일 1차 심사에서 조합이 원하는 수준의 일반분양가가 책정되지 않자, 이의를 제기해 2차 심사를 받아 끝내 3.3㎡당 7209만원을 확정했다.
후분양을 하게 되면 분양가가 높아질 뿐 아니라 분양대금 납부 기간도 짧아져 청약당첨자들에게는 부담이다. 이미 자금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고,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당첨이 된다고 해도 대금을 치를 수 없게 된다.
지난달 분양한 래미안 원펜타스는 당첨 후 분양 대금 납부 일정까지 주어진 시간이 2개월이다. 이달 19~21일 정당계약을 맺을 때 계약금 20%를 내고 입주 지정기간에 나머지 80%를 내야 한다. 84㎡ 분양가가 최고 23억3000만원인데, 계약금으로 4억3000만~6000만원, 잔금으로 16억~18억원이 필요하다.
■ 집값 안정 효과 없어진 분상제
분상제의 시세 안정 효과도 무의미하다. 저렴한 분양가 때문에 재정비 사업을 위축시키고, 최근 건설비용 상승으로 공사 중단 가능성까지 높아지기 때문이다. 분양을 받은 후에는 주변 시세와 키맞추기를 하며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분상제를 적용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의 일반분양가는 3.3㎡당 5653만원이었지만, 현재는 국내 ‘최고가 아파트’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이 단지 84㎡(이하 전용면적)가 49억8000만원에 팔렸다.
강남권에서 가장 높은 분양가지만, 청담르엘 역시 ‘로또’ 아파트로 불린다. 전체 1261가구 중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전용면적 59~84㎡ 149가구를 일반분양한다. 84㎡ 기준으로 분양가는 약 25억원에 달한다. 인근 ‘청담자이’ 82㎡가 지난 6월 32억9000만원에 거래됐고, 삼성동 ‘래미안 라클래시’ 호가는 35억원에 형성되어 있다. 8억~10억원에 가까운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분상제를 적용한 곳에서 후분양을 통해 일반분양가를 높이며 수분양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시세 안정효과도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지금까지 인위적인 규제로 집값을 잡은 사례는 없다”고 했다. /이승우 땅집고 기자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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