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용산·강남서도 시공사 선정 유찰…집 짓는단 건설사가 없다

뉴스 이지은 기자
입력 2024.08.12 07:30


[땅집고]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땅집고] 올해 서울에서 역대급 수주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용산구 한남5구역. 지하 6층~지상 23층, 51개동, 총 2592가구 대단지는 짓는 재개발 구역이다. 한강을 끼고 있어 새아파트가 들어서기만 하면 서울 강북권 최고 부촌으로 떠오를 것으로 평가받는 한남동 입지인데다, 과거 인근 한남3구역 시공권을 두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제지할 정도로 건설사 간 경쟁이 뜨거웠던 만큼 이번 한남5구역 시공에도 눈독을 들이는 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지난 16일 한남5구역 재개발 사업 시공사 선정일에 DL이앤씨 한 곳만 출사표를 던지면서 결국 유찰됐다. 조합이 3.3㎡(1평)당 916만원, 총 공사비 약 1조7584억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내세웠는데도 아파트를 지어주겠단 건설사를 찾지 못한 것이다. 현행 정비사업 관련법에 따라 시공사 선정에 건설사 한 곳만 입찰하는 경우 유찰 처리하도록 하고, 만약 2회차에서도 유찰되면 조합이 직접 선정한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한남5구역 조합은 일단 같은 공사비 조건으로 오는 9월 26일 시공사 재입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른바 ‘강남3구’로 묶이는 송파구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달 5일 총 2364가구 규모 아파트 건설을 계획한 송파구 마천3구역 시공권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0곳’이었던 것. 전달 진행한 현장설명회에 GS건설·DL이앤씨 등 대형건설사를 포함해 8개 기업이 참여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다. 마천3구역 역시 공사비가 3.3㎡당 810만원, 총 1조255억원에 달했지만 재입찰을 면치 못하게 됐다.

[땅집고] 서울 용산구 한남5구역 일대. /뉴스1


최근 서울 정비사업 현장에서 건설사 간 수주전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다. 공사비와 인건비가 동반 상승하고 있는 탓에 애써서 정비사업을 수주해내도 큰 수익을 보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건설사들이 경쟁을 피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군다나 경쟁 입찰을 벌이는 경우 조합원 표심을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추가 비용과 인력도 적지 않아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공사 선정 유찰을 겪는 정비사업 현장은 대부분 가로주택사업이나 소규모 재건축 등 가구수가 200~300가구에 그치는 소형 사업지였다. 이런 정비사업은 1000가구에 가까운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비교하면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건설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동구 암사동 495 가로주택(252가구) ▲마포구 공덕현대 소규모재건축(219가구) ▲강북구 미아3구역 가로주택(206가구) ▲관악구 봉천동 1535 가로주택(64가구) 등 서울 곳곳 소규모 정비현장마다 시공사 선정 유찰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이 같은 분위기가 용산구나 강남권 등 핵심 입지에 정비사업장으로도 확산된 분위기다. 용산구 한남5구역 재개발(2592가구)과 송파구 마천3구역 재개발(2364가구)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강남구 도곡개포한신아파트 재건축 조합도 3.3㎡당 920만원, 용산구 산호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830만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내세웠지만 응찰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어 줄줄이 유찰됐다.

[땅집고] 지난해와 올해 시공사 선정 유찰을 겪은 서울 정비사업 구역들 일부 정리. /이지은 기자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업성이 비교적 낮은 비(非)강남권 조합은 시공사 찾기에 더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 3.3㎡당 750만원, 총 1조700억원 공사비를 제시한 총 2786가구 규모 영등포구 신길2구역을 비롯해 ▲서대문구 가재울7구역(1407가구)  ▲광진구 자양7구역(917가구)  ▲동작구 사당5구역(510가구)  ▲성북구 길음5구역(808가구) 등이다. 총 1476가구 규모 강서구 방화3구역의 경우 기존 공고에선 금지했던 컨소시엄 구성을 재입찰에서 허용하는 등 문턱을 낮추는 모습도 보였다.

조합이 시공사 재입찰을 진행하거나, 수의계약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이상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정비사업에서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만연한 만큼 조합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시공사를 찾아야 하는 것. 이렇다보니 조합마다 일부 조합원들은 공사비를 올려서라도 마음에 드는 건설사가 응찰하도록 유도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용산구나 강남3구에선 굵직한 정비사업 구역마다 특정 건설사가 최소 수 년간을 관리하면서 잠정적 시공권을 확보한 경우가 많아 경쟁이 벌어지지 않고 있는 영향도 있다”면서 “또 최근 공사비·인건비 등 물가 상승폭이 만만치 않은 만큼 애초에 평당 1000만원은 받아야 추후 조합과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인식도 없지 않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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