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옆. 고속도로에서도 쉽게 보이는 유럽풍 건물이 있습니다. 고급 빌라 단지처럼 생긴 이곳은 2009년 국내 최초 어르신 주거 단지로 조성된 곳입니다. 요양원과 노인복지주택, 병원이 한곳에 있는데요. 위에서 보면 8각형 모양인 요양원은 월 이용료가 최고 1200만원에 달하는 너싱홈을 갖추고 있어 국내 최고 프리미엄 시설로 불립니다.
■ 타워팰리스 시공사가 2009년 만든 빌라의 정체
‘헤리티지 너싱홈’은 최고가 요양원인 만큼, 내부 인테리어는 고급 호텔 같은 분위기입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대리석 바닥 위로 커다란 기둥들이 줄줄이 있고, 유리문 너머로 정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로비에 있는 맞이 공간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는데요. 카펫 위로 벽난로와 피아노, 앤틱한 쇼파가 놓여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모두 2009년 준공 당시의 모습입니다. 한 의료재단이 최고급 노인복지시설을 짓기로 한 뒤, 외부와 내부 전반에 고급 주택에서 볼법한 수입 자재를 활용해 건물을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2002년 타워팰리스를 지었던 삼성중공업이 시공했습니다. 이곳은 운영사가 경영난에 처하면서 2017년 경매에 넘어가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2023년 5월 종근당 자회사(종근당산업)가 인수하면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김영희 헤리티지너싱홈 원장은 “세월이 흐르면서 낡은 부분은 수선하고 있지만, 헤리티지는 건물 골조와 설계, 내·외장재가 처음부터 고급으로 지어진 곳”이라며 “잠시 머무는 듯한 과거 요양원 분위기에서 벗어나 내 집 같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인실 月 이용료 1200만원…그래도 ‘프리미엄’ 찾는 사람들
헤리티지는 노인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입소가 가능한 일반 요양원인 ‘퍼블릭’과 등급 판정에 따른 지원 없이 24시간 집중 케어를 받는 너싱홈인 ‘프라이빗’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달 기준 입소자는 총 131명입니다.
퍼블릭은 모두 2인실로, 일반실과 전문요양실, 치매전담실로 구분합니다. 국가가 보장하는 장기요양급여를 지원받을 경우 이용료는 350만원 정도입니다. 경우에 따라 재활 집중치료나 연하치료, 열 치료 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곳이 프리미엄 요양원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돌봄 서비스입니다. 프라이빗이 아닌 퍼블릭 요양보호사들도 다른 요양원에서 근무할 때보다 적은 수의 어르신을 돌봅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요양원은 입소 어르신 2.3명 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의무로 고용해야 하는데요. 입소 어르신이 23명이면 요양보호사 10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헤리티지 너싱홈의 경우 어르신 1.34명 당 1명의 요양보호사를 두고 있습니다. 여유가 있는 만큼 어르신에게 밀착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욱 밀착케어를 제공하는 공간도 있는데요. 프라이빗의 경우 개인이 고용한 간병인이 1대1로 24시간 돌봐주는 시스템입니다. 간병비를 포함해 이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월 1200만원입니다. 2인실은 월 900만원을 내야 합니다. 이런 1대1일 간병 시스템이 가능한 곳은 한국에 단 3곳(시그넘하우스, 노블카운티)밖에 없습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재 100명 가량이 각각 대기 중입니다.
■ 집에서 쓰던 가구 그대로, 태블릿으로 치매 방지 훈련도
가격이 상당한 만큼, 어르신 1명이 사용하는 공간도 매우 넉넉한 편입니다. 1인실과 2인실 크기는 모두 약 10평(전용면적 33㎡)입니다. 벨포레스트 1인실(약 4평)보다 2배 이상 큽니다. 각 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간병인이 침대를 놓거나 개인적으로 쓰는 공간이 있고, 중문을 지나면 어르신이 지내는 방이 나옵니다. 경부고속도로와 분당신도시가 내려다보이는 큰 창문이 2개씩 있습니다. 1인실은 침대 맞은편에 간이 주방을 갖췄습니다.
욕실에는 입구부터 샤워기, 변기, 세면대에 모두 미끄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바가 설치돼 있습니다. 종근당산업은 원래 욕실에도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보다 안전한 욕실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욕실 리모델링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낙상은 골절과 합병증으로 이어지는데, 치료 시기를 놓친다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어르신들에게는 위험한 사고입니다.
어르신들은 방에서 지낼 뿐 아니라 옥상과 1층 테라스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거나 여러 치료활동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재활치료실과 물리치료실에서는 신체능력 저하를 막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뤄집니다. 치매전담실에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태블릿을 이용해 오래전 기억을 자극하는 회생치료가 진행됩니다.
김영희 헤리티지너싱홈 원장은 “헤리티지 너싱홈은 다른 곳보다 입지가 우수할 뿐 아니라 집처럼 만들어져 아늑한 분위기”라며 “자녀들이 부모님 집을 방문하는 것 처럼 편안하게 오는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안전하다면 입실 면회와 외박, 외출이 모두 자유롭고, ‘안 돼요’라는 말을 최대한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노인 1000만 시대, 급격한 고령화에 요양시설 부족하다
우리나의 노인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미 우리나라가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는데요.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의료 기술이 발달한 영향으로 기대수명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도심에서 운동이나 문화 활동을 즐기는 액티브시니어도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요양원 입소 연령도 대폭 낮아졌습니다. 약 30년 전에는 70세를 전후로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8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시설을 찾습니다.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요양원의 중요성이 더욱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든 요양원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노인 인구가 워낙 급증한 탓에 수요 대비 공급이 적은 상황이 됐습니다.
최근 정부는 초고령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요양원을 운영하려면 땅과 건물을 모두 소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손보기로 했습니다. 빌린 땅에도 요양원을 지을 길이 열렸습니다. 이미 KB와 신한 같은 대기업이 계열사를 통해 시니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처럼 어르신 관련 사업이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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