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한국의 주거 형태에서 단절된 공간이던 욕실이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제안이 관심을 끈다. 고령 인구의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욕실을 향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초고령 사회에서 건축과 인테리어’을 주제로 한 ‘2024 코리아빌드’ 트렌드 세미나가 열렸다. 정다운 디에이건축 상무는 “초고령 사회에서 욕실이 주거 공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프로시니엄84(Proscenium 84)’로 정의하는 신평면 도입을 제안했다.

프로시니엄84는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주택형을 바탕으로 기존과 다른 공간 배치로 구성한 평면이다. 기존에 넓은 거실이 차지했던 아파트의 중심 공간을 욕실과 주방이 대체하는 형식이다.

정 상무는 “70대 인구가 20대 인구를 넘어선 초고령 사회에서 지금의 평면 구성에 따른 주택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 상무에 따르면 고령자 안전사고 중 낙상 사고 비율은 81.3%에 달한다. 그 중 욕실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19.6%에 달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주택 구조에서 욕실은 실외에 위치한, 춥고 지저분한 공간이었다.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잡은 뒤에도 욕실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집안의 다른 공간과 분리하기 위해 단차를 만들고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곳에 숨겨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주방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주방을 이용할 때는 주로 벽을 바라보기에 사실상 거실과 단절됐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아일랜드식 주방이 보편화되면서 지위가 점점 바뀌고 있다.

정 상무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단절된 욕실을 주택의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같은 구조의 주방이나 거실에서 사고 위험이 높은 욕실에 있는 어르신을 케어하기 힘들다”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듈형 화장실과 샤워실 등을 도입해 주방과 마주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상무는 “프로시니엄84를 지금 바로 현실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앞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 과제”라며 “20여년 전 아일랜드 주방을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시행사에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는데, 10년만에 보편화됐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 그 기간이 단축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인테리어 측면에서 어르신들의 보행 보조 장치를 설치하는 걸 꺼려할 수 있다”면서도 “레일바, 손잡이 등을 벽에 매립했다가 이용할 때 자동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식으로 기술적인 부분은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승우 땅집고 기자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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