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제 때 반환하지 않아 발생한 전세보증 사고 규모가 올해 4개월 만에 2조원에 육박했다. 대규모 전세사기 등과 맞물려 사고 규모 및 액수가 커지면서, 전세보증 심사를 주관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부실 검증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3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국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이 1조9062억원으로 나타났다. 사고 건수는 8786건이다. 지난 1~4월 보증사고는 작년 같은 기간(4747건·1조830억원)과 비교하면 건수는 85%(4039건), 사고액수는 76%(8232억원) 각각 증가했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연간 사고액은 역대 최고치였던 작년 규모(4조3347억원)를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세입자에게 전세금 반환을 요청받은 HUG가 올해 1~4월 내어준 돈(대위변제액)은 1조2655억원에 달했다.
전세 보증보험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않을 때 HUG가 자체 자금으로 먼저 세입자에게 반환한 뒤 2~3년에 걸쳐 구상권 청구와 경매를 통해 회수하는 상품이다. 보증사고 규모가 커지면서 HUG의 집주인에 대한 대위변제액 회수율은 10%대에 머물렀다. 작년 한 해 동안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3조5544억원을 돌려줬는데, 이 중 5088억원만 회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 “이틀 만에 전세보증보험 심사 뚝딱 완료… HUG의 검증절차 허술해”
전세보증사고 규모가 커진 원인은 전국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전세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고 위험이 있는 주택인지 여부를 판단해 보증을 내주는 HUG의 심사 과정이 느슨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부산 180억원대 전세사기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법원이 처음으로 잘못된 보증 심사를 한 HUG에 책임을 묻는 판결을 냈다.
보증금을 변제하는 상품을 취급하는 기관인 HUG가 임대차계약서 위조 여부 등 검증할 때 더 꼼꼼히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다. 피해자들은 “위조된 임대차계약서를 제출받고도 불과 이틀 만에 심사를 완료하고 보증서를 내준 뒤 수개월이 지나 취소 통보를 하는 심사 과정의 허술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세보증보험 가입기준 규제 ‘딜레마’…전세사기 발생 위험, 국가가 책임져야”
정부가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전세보증보험 가입기준 강화 규제도 오히려 역전세 현상을 심화해 전세사고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전세사기 방지를 위해 비(非)아파트 전세보증 가입에 활용되는 주택가격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26%(공시가격 적용 비율 140%x전세가율 90%)로 낮추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빌라 가치가 강제로 하락한다는 임대인들의 반발이 일어나자 지난 13일 126% 원칙을 유지하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인정하는 감정가를 활용하는 방안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126%룰’이 폐지되어도 빌라 전세 기피현상이 심각해 빌라 시장이 붕괴될 것으로 예측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세입자들이 더 이상 구해지지 않고, 빌라 매물도 늘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나래 주거안정연대 회장은 “전세사기가 빈번하게 발생한 지역에서는 감정가가 공시가격 126% 보다 더 떨어진 경우도 있다”며 “감정가를 반영하는 것은 예전보다는 나아진 방안이지만 이미 빌라 시세가 너무 떨어져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갔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전세사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빌라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어졌고, 빌라 시세까지 급락하다보니 집주인들이 매물을 던지듯 내놓으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가라앉고 있다”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전세보증보험 가입기준을 강화하면 세입자가 빌라 전세에 머물기 어려워지고, 느슨하게 운영하면 전세사기 및 사고 위험이 커지는 양면성이 있다”며 “정책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HUG가 보증보험을 내줄 때 사기 발생 위험이 있는지 책임지고 검증해 전세사기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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