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막무가내 '신통기획' 선정에 빌라시장 날벼락…미분양에 연쇄도산 위기

뉴스 김리영 기자
입력 2024.04.19 17:46

[땅집고] “신통기획 때문에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서울 노후 주거지에 10가구짜리 작은 신축빌라를 짓고 있던 도중, 갑자기 해당 부지가 신통기획 사업 후보지에 지정됐더라구요. 이미 골조가 5층까지 올라갔는데 부술 수도 없고… 후보지로 지정된 시점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이고 권리산정기준일이 적용돼 분양이 통째로 안 되고 있습니다. 이 사업지에서 이자로만 수천만원씩 나가고 있네요. 그야말로 날벼락 맞았습니다.”

[땅집고] 서울 중랑구 면목동 일대 주택가 모습. /김리영 기자


2021년 3월 A 건설업체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최고 6층, 10가구 규모 소형 빌라를 지어 분양할 목적으로 120평 토지를 매입했다. 건축허가를 그 해 6월에 받았고, 8월 착공해 선분양에 들어갔다.

하지만, A업체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한창 건축 중이던 2021년 12월쯤 서울시가 이 땅이 포함된 중랑구 면목동 69-14 일대 5만8000㎡를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 사업 대상지 후보지 21곳 중 하나로 선정한 것이다.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유형 중 하나로 노후 주거지 정비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용적률 완화 등 혜택을 주는 사업이다.

시는 투기 방지를 목적으로 후보지 발표일을 권리산정기준일로 지정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A업체와 같은 영세한 빌라 건축주들은 빌라를 분양해도 현금청산대상 건물이 되면서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A업체 대표는 “토지 매입과 건축비, 금융비로 총 55억원이 들었는데 현금청산 주택으로 낙인 찍혀 멀쩡한 신축 빌라 8가구가 공실인 상황”이라며 “매달 이 사업지에서 금융비로 2000만원씩 나가고 있다”고 했다.

땅집고에 신통기획 지정 및 권리산정일 기준으로 빌라 분양에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건축주만 총 15업체(사업지 16곳), 수분양자는 15명, 총 주택 수는 240여가구에 이른다. 이들은 오는 22일 10시 서울시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땅집고] 신속통합기획 사업 대상지에 포함돼 빌라 분양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건축주 목록. /독자 제공


■ 빌라 건축주들, “신통기획 지정으로 빌라 분양 포기할 지경”

권리산정기준일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지에서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시점을 말한다. 이 날짜 이후 신축한 건물의 소유주는 분양권을 받을 수 없고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 신속통합기획은 투기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권리산정기준일을 ‘후보지 공모일’로 규정했다. 분양권 취득을 위한 다세대 신축이나 지분 쪼개기를 원천 차단한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빌라 건축주들은 신속통합기획의 권리산정기준일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했다. 후보지로 지정될 지 여부를 미리 알 수 없고, 최종 탈락해도 일정기간 권리산정기준일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신통기획은 권리산정기준일 전까지 건물을 완공해 소유권 이전등기가 완료한 소유주에게만 분양권을 인정한다. 착공 허가를 받고 공사를 진행한 사업장은 무조건 현금청산 대상으로 분류한다. 반면 서울시가 추진하는 또다른 정비사업인 모아타운의 경우 권리산정기준일까지 건축허가를 받아 착공 신고를 하면 분양 대상으로 인정한다.

한 건축주는 “모아타운은 건축허가 받아 착공된 사업장은 조합설립 전 소유권을 이전하면 분양권을 인정한다”며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도심복합사업도 과도한 권리산정기준으로 인해 기존 ‘공고일’에서 ‘법 개정일’로 권리산정일을 변경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착공 현장에 대해서는 조합설립일 전까지 소유권이전 등기하면 분양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권리산정기준일 당시 이미 사용 승인된 건축물이나 주택 신축 목적으로 건축 허가 및 착공 신고에 따라 시공 중인 경우에는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드린다”고 했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신통기획이 도심 소규모 주택 공급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땅집고]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도심복합사업 권리산정기준일. / 서울시, 국토교통부


신통기획은 신청 후 탈락한 지역에 대해서도 권리산정기준일 적용을 일정 기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소규모 주택 공급 대상지 자체가 축소됐다는 것이다. 신통기획은 현재까지 총 세 차례 후보지 선정이 진행됐고 이 중 1차 신청 102곳 중 21곳만 대상 후보지로 선정이 됐고, 2차는 75곳이 신청해 25곳만 후보지가 됐다. 3차 사업은 수시로 선정이 진행됐다.

시는 1·2차 미선정 후보지에 대해 권리산정기준일을 2023년까지 적용하도록 했다. 이 기간까지 서울 전역에 170곳 이상이 빌라 등 소규모 주택을 공급할 수 없는 지역으로 묶였던 셈이다.

■ “권리산정일 적용 기준, 다른 재개발 사업과 비슷하게 적용해야”

최근 건축비 및 금리 상승 등의 여파로 서울의 서민 주택 연립·다세대 인허가 물량은 지난해 3751가구로 전년도보다 7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 주택 인허가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0~2021년도에는 2만5000건을 넘겼는데, 주택 시장이 침체한 2022년부터 1만6160가구로 급감했고, 2023년에는 4분의1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땅집고] 서울 연도별 다세대, 연립 인허가 물량. /국토교통부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도심에 서민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신통기획의 엄격한 규제 때문에 단지형연립, 다세대 등 소규모 주택 공급을 하는 사업자들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이미 지어놓은 빌라도 ‘온전치 못한 건물’이란 낙인이 찍혀서 분양이 어려운 점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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