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미국 애리조나주 ‘선시티(Sun-City)’는 은퇴자도시 대명사다. 선시티는 1960~1970년대 조성된 후 여가·문화 시설을 내세워 미국 은퇴자들을 흡수하면서 성장했다. 최근에는 인구가 약 4만 명(2020년 기준)까지 늘었다. 이곳은 5명 중 4명(약 80%)이 65세 이상일 정도로 노인 인구가 많은데, 대부분 경제·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마트,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도 있다.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은퇴자도시가 생겨날 전망이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로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은퇴자도시를 표방하면서다. 정부 역시 이러한 은퇴자 거주 지역을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지역의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지역의 인구를 끌어오거나 출산율을 제고시켜야 하는데, 후자의 경우 이미 많은 지자체가 실패 사례를 남겼다.
■ ‘성공 경험’ 괴산군 “은퇴자마을, 인프라 관건!”
이에 최근 들어 군 단위 지자체에서는 ‘은퇴자마을’을 조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09년 국내 최초 대학 동문 공동체 마을 ‘미루마을’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충북 괴산군이 대표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들어선 미루마을은 인하대 동문 50여 가구가 귀촌을 목표로 만든 곳이다. 마을 입구에 네 그루의 미루나무에서 이름을 땄다.
괴산군은 칠성면 율원리 일원 3만 4866㎡에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성산별빛마을’을 추진 중이다. 은퇴자와 귀농·귀촌인 등을 위한 임대와 분양형 타운하우스 각각 20가구를 만든다. 단독주택(15가구) 필지를 포함하면 총 55가구가 거주할 수 있다. 이곳에는 공유 주방과 헬스클럽 등을 갖춘 커뮤니티센터, 정원식물 스마트팜, 북 카페 등도 들어선다.
괴산군 관계자는 “성산별빛마을의 경우, 차로 3분 거리에 수영장 같은 체육시설, 부대시설 등을 갖춘 ‘자연드림파크’가 있을 뿐 아니라 카페나 마트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기반 시설이 부족하면 농촌에 정착하려던 은퇴자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곳은 인프라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 정부, 거창·인제에도 ‘은퇴자마을’ 만든다
성산별빛마을은 8개 정부 부처가 나서 은퇴자나 귀농·귀촌 청년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인 ‘지역활력타운’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지방활력타운은 주거·돌봄·일자리 복합 주거 거점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으로, 올해 처음 도입됐다.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교육부까지 무려 8개 부처가 참여한다.
‘지방활력타운’은 윤석열 정부의 인구 감소에 대응책 중 하나로,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에서 추진 가능하다. 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서 ▲매력적인 정주 여건 조성 지원 ▲생활인구 유입 및 활성화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및 산업 진흥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에 2027년 들어서는 ‘지식-인(IN) 거창 아로리타운’도 지역활력타운 사업 대상지다. 거창군은 총 3만 8900㎡ 부지에 걸쳐 타운하우스 16가구, 단독주택(32가구) 필지, 시니어형체육센터, 복합문화센터 등을 조성한다.
이외에도 충남 서천군은 2005년 ‘농어촌복합노인복지단지’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후 노인 복지관·요양병원·요양시설, 장애인 종합복지관·보호작업장, 고령자용 국민임대아파트(보금자리 주택)를 한곳에 조성해 ‘ 서천어메니티복지마을’을 만들었다.
■ 은퇴자 마을 성공 관건은? 인프라!
최근 들어 이러한 은퇴자도시 조성 바람은 더욱 강력하게 불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인구 감소 위기가 드리운 가운데, 지방 소도시의 경우 이미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고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2년 11만 2000명이던 충북 괴산군 인구는 1988년 10만 선이 무너졌다. 불과 3년 뒤(1991년)에는 6만 선 아래로 떨어졌다. 줄곧 하락한 결과, 올 2월 기준 인구는 3만 6381명이다.
전입 인구가 아니면 인구를 더 늘릴 방법은 사실상 없다. 2023년 괴산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단 56명에 불과하다. 같은 충북지역이지만 비교적 대도시인 청주시(4514명)의 1% 수준이다. 이는 괴산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전국 89개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하고, 재정·행정 지원을 약속한 이유다.
다만, 은퇴자도시 성공을 위해선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은퇴자의 경제적 기반이다. 은퇴 후 소비 활동을 위해선 반드시 연금 등 생활비가 필요하다. 은퇴자마을에선 새로운 생산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은퇴자도시 역시 소비가 가능한 시설을 갖춰야 한다. 유통망이 촘촘하게 깔린 대도시와 달리, 군 단위 지역은 상권이 없거나 배달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기반시설 부재는 은퇴자들의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대규모 은퇴자 마을을 조성한다면 은퇴자가 꼭 가서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야 한다”며 “주거와 생활, 의료와 복지 등이 모두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광주에서는 미국 대학을 연계해 은퇴자 마을(UBRC· 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을 만든 것처럼, 학교를 이용해 은퇴자에게 주거와 교육시설을 제공하는 사례도 있다. 조선대는 법무법인 대륙아주, 부산 동명대와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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