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설계자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시흥시를 규탄한다, 시흥문화원 건립 설계 공모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한다!”
이달 11일 경기 시흥시는 장현동 275-2번지 일대에 짓는 시흥문화원 건립공사 건축설계에 대한 공고를 냈다. 지하철 서해선 시흥시청역 역세권이면서, 시흥시청과 북동쪽으로 맞닿은 4720.9㎡ 부지에 연면적 2878㎡ 규모 문화 및 집회시설을 짓는 공사다. 예정 공사비는 91억1866만원, 설계비는 4억6748만원으로 책정됐다.
그런데 최근 건축사들이 시흥시가 발주한 이번 ‘시흥문화원’ 건축설계 공모를 보이콧하겠다는 성명서를 내 눈길을 끈다. 시흥시가 해당 공모에 당선됐던 건축사사무소에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이유다. 현재 건설부동산 경기가 악화하고 자잿값·인건비가 폭등하면서 민간공사 발주가 멈춰선 상황이라 공공 프로젝트 수주로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총 95억원이 넘는 시흥문화원 공공건축 공모를 집단으로 거부하는 건축사들의 이번 움직임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당선 건축사사무소 “공사비 전가, 잦은 구조변경으로 손해 막심…갑질이 도 넘어”
시흥시는 이미 2022년 2월 시흥문화원 건축설계 공고를 내고 같은해 6월 당선자를 뽑은 뒤 사업을 진행했던 이력이 있다. 그런데 시흥시가 2년여 만인 이달 재공고를 낸 것이다.
땅집고 취재 결과 시흥시는 당시 공모 당선자인 A건축사사무소와 시흥문화원 건립 과정에서 1년 넘게 갈등을 벌이다, 결국 지난해 10월 계약 해지까지 다다르면서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A건축사사무소는 시흥문화원 건축설계 공모에 당선된 뒤 시흥시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방면으로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건축사사무소는 먼저 공사비 문제를 꼽는다. 시흥시가 처음으로 2021년 구상한 시흥문화원은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였다. 예정공사비는 72억원, 설계비는 3억6413만원으로 책정됐다. 이후 2차 기획설계에선 건물 규모가 지상 5층으로 커졌다. 그런데 시흥시가 공사·설계비는 증액해주지 않은 데다, 건물 연면적을 산정할 때 외부 필로티 등 공간을 누락한채로 공모를 진행하는 바람에 실제 공사에 필요한 금액보다 더 낮은 비용이 책정됐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당선자가 부담해야 하는 부당한 구조가 됐다는 것이 A건축사사무소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2022년 첫 공모 내용에 따르면 시흥문화원 연면적은 2878㎡으로만 기재됐다. 하지만 이는 실내 면적만 산정한 수치로, 당선자가 실제로 설계·시공해야 하는 옥외면적까지 포함하면 면적이 4500㎡로 1.5배 가까이 늘어난다. 더군다나 공사비 산정 기준에도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흥시가 시흥문화원 공사비를 3.3㎡ (1평)당 825만원으로 정할 때 업무시설인 월곶어울림센터를 기준으로 하는 바람에, 같은 문화집회시설 용도인 시흥미디어센터(1200만원)보다 단가가 30% 이상 낮게 책정됐다는 주장이다.
잦은 구조변경도 갑질 요소 중 하나로 제기된다. A건축사사무소에 따르면 당초 시흥문화원은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이었다. 그런데 시흥시 쪽에서 철골구조로 변경해달라고 해 이에 맞춰 설계를 바꿨으나, 또 다시 철큰콘크리트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렇게 구조가 수 차례 변경되는 바람에 과업 일정이 촉박해진 A건축사사무소는 용역기간 연장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A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약 3개월 만에 구조변경, 기술자문, 건축허가, 공사계약심사까지 끝내라는 말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정이었다”며 “과업 수행이 어렵다는 뜻을 전달하자 시흥시는 본사에 귀책 사유가 있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전했다.
결국 시흥시와 A건축사사무소 간 계약은 지난해 10월 해지됐다. A건축사사무소는 시흥시로부터 부정당업체로 지정돼, 향후 5개월간 공공이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하지 못하는 제재도 받고 있다.
■시흥시 “설계비 더 받으려는 일방적 주장…법적 대응할 것”
시흥시는 위 같은 A건축사사무소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시흥시는 이달 1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A건축사사무소 측에 계약에 없던 옥외 필로티 공사까지 72억원에 맞춰서 진행하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2022년 첫 공모가 옥외 필로티 면적을 제외한 설계안을 제출하라는 내용으로 진행됐고, 당선자인 A건축사사무소는 이 지침에 따라 옥외필로티 면적을 뺀 연면적 설계안을 만들고, 추정공사비로 예산 범위 내에 있는 71억9000만원을 제시했다는 것.
더불어 시흥시는 2022년 첫 공모에서 제외됐던 필로티 등 옥외공간을 고려해 시흥문화원 총 사업비를 기존 86억6800만원에서 136억5200만원으로 증액하는 의결 승인을 받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증액분에는 옥외필로티, 물가상승분, 다목적강당 인테리어 공사비, 설계비 등 부대비용이 포함됐다.
구조변경 문제와 관련해서는 A건축사사무소가 일방적으로 시흥문화원 구조부를 철근콘크리트에서 철골로 변경하고, 검토용역비 2억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시흥시 주장이다.
이른바 ‘갑질’은 A건축사사무소 측이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A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사업 과정마다 담당공무원에게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국토교통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민사ㆍ형사ㆍ행정상 법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고지하며 압박을 줬다는 설명이다.
■시흥시-당선 건축사 결국 소송전으로
현재 시흥시와 A건축사사무소 측 갈등은 법적 공방으로 치달은 상태다. 시흥시가 A건축사사무소에 설계용역비 중 2억5500만원을 반환하라고 청구하자, A건축사사무소가 이를 거부하고 추가 설계비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지난 2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이번 시흥문화원 사태를 두고 1000여명 건축사로 구성하는 새건축사협의회는 “소임과 책임을 회피한 채 설계자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시흥시를 규탄하며 발주처와 건축가의 상생, 협력할 수 있는 건축문화를 확립하고자 시흥문화원 건립 설계공모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는 바”라는 입장문을 냈다.
이에 대해 시흥시는 “A건축사사무소는 당선 이후 1년 동안 설계비 증액을 요구하며 사업 추진을 고의적으로 지연시켰다”며 “시흥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시흥문화원 사업 추진을 지연시키는 행위에 대해 법적 절차로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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