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지금 50대 이상이라면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TV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한지붕 아래 개성이 뚜렷한 세 가족이 모여 살면서 갈등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울고 웃었다. 부족했던 주거 공간을 소유자와 세입자가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급격한 인구 성장과 산업화를 거쳐 온 우리 사회의 필연이었고 1980~90년대 다가구·다세대주택이라는 형태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1990년대 대학을 다녔던 이들은 미국 시트콤 드라마 ‘프렌즈’를 떠올린다.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6명의 남녀가 사랑과 우정을 나누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뤄 10년 가까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영어 공부도 할 겸 드라마를 즐기면서 뉴욕 생활에 대한 동경심을 키우기도 했다.
아파트 하나를 남녀가 공유(Share)하면서 같이 생활(co-living)하는 모습이 당시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공유 주택은 젊은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주거비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들만의 우정과 낭만을 키우는데 좋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도 코리빙 하우스 바람이 불고 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행사와 건축사사무소, 자본 투자자가 만나 도심, 역세권, 대학가 등에서 전용 공간은 줄이되 프라이버시(사생활)는 보장하고 공용공간을 교류, 학습, 여가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뿐만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 프리랜서 등 다양한 젊은이들이 기존의 좁고 답답한 원룸에서 벗어나 코리빙 하우스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도 건축법과 민간임대특별법을 개정해 이같은 흐름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3월 임대형 기숙사 제도를 도입해 각종 규제를 완화했고, 지난 8일부터는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임대형 기숙사를 짓는 사업자에게 최장 20년 장기 저리로 1실당 최대 9000만원까지 융자를 해주고 있다. 사회적 변화와 수요에 부응하는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다. 어떤 투자자나 개발업자도 주택개발에 필요한 자금 전부를 스스로 조달하기는 어렵다. 기금 융자만으로 부족한 사업비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로 조달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보증기관들은 구분등기가 안된다는 이유로 PF보증을 거절하고 있다. 임대형 기숙사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공급하려면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와 같은 금융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출자자를 모아도 금융권에서 PF보증이 되지 않아 대출을 거절,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빈수레만 요란했지 아직까지 공급 실적도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는 올 초 주거 패러다임을 민간 전세에서 월세형 장기임대로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1980~90년대 산물인 다가구·다세대주택이 전세를 대체할 장기임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주택공급이 부족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도시형 생활주택, 주거용 오피스텔에서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어 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혁신적인 상품이 제대로 작동하고 공급되려면 기존 틀에 갇힌 사고 방식으로는 공급 활성화가 불가능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임대형 기숙사를 바라보는 공적 금융기관의 의식은 아직도 ‘한 지붕 세 가족’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민간은 최소한의 에쿼티를 대고 공적기관이 출자·융자·PF보증으로 연결되는 금융지원을 통해 임대형 기숙사를 적극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전세 불안을 극복하고 월세형 장기 임대 시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글=서용식 K-코리빙포럼 공동추진위원장(수목건축 대표), 정리=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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