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그동안 자금난으로 허덕이던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가 최근 경기 성남시 판교 일대에 갖고 있던 대규모 부지를 매각한다고 나서 부동산 업계 주목이 쏠린다. 수도권 핵심 업무지구로 떠오른 판교 알짜 입지면서, 과거 종상향 여부를 두고 ‘제2의 백현동’ 특혜 논란이 불거졌던 땅이라 누가 새 주인이 될지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세종연구소는 1983년 설립한 뒤 외교·안보 및 남북통일 분야 국가전략 등을 연구해 온 민간 연구기관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미얀마 아웅산 테러로 숨진 외교사절의 유족이 지원 등을 명분으로 기업으로부터 기금 500억원을 모아 세웠다. 민간연구소지만 외교부에 등록된 재단법인이라 임원 변경 등은 외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설립 초기에는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재단’이었는데 이후 1987년 일해연구소, 1988년 세종연구소로 두 차례 개명했다. 특히 세종연구소 부지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전자연구소 부지로 사용하려고 갖고 있던 땅이다. 정 회장은 청문회에서 “사실상 강제 기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세종연구소, 성남 알짜 부지 내놨지만…최고 4층짜리 건물밖에 못 짓는 땅
세종연구소는 오는 2월 5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일대 부지 5만7210㎡에 대한 매각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지 내 건물은 총 3개동으로 본관인 A동, 회관동인 B동, 창고인 C동을 포함한다. 공시지가는 총 1665억원이나 실질적인 시세는 이 금액의 1.5~2배 이상 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매각 주관사로는 삼일회계법인이 채택됐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매물로 나온 세종연구소 부지가 판교테크노밸리와 가까우면서 서울 강남 내곡동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있고, 토지 규모가 제법 커 희소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서울 근교에 개발 가능한 토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이 땅을 매입해 보유하기만 해도 향후 차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부지 용도가 자연녹지지역이라 개발이 다소 제한되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건축할 경우 건폐율 20% 이하, 용적률 100% 이하, 높이 제한 4층 이하 규제를 적용받는다. 이 같은 규제 사항들을 고려하면 현행법상 세종연구소 부지에서 가능한 건축 행위는 단독주택, 교육연구시설, 운동시설, 관광휴게시설, 아파트를 제외한 공동주택, 문화집회시설, 종교시설 등에 그친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토지 이용 규제 및 시장성 등을 고려할 때 기업 연구소, 고급 주거 단지, 시니어타운, 지식산업센터, 데이터센터로 개발 가능한 부지”라고 내다봤다.
■과거 ‘종상향 특혜’ 논란 불거지기도
세종연구소가 강남·판교와 가까운 알짜 부지를 매물로 내놓은 이유가 뭘까. 업계에선 세종연구소가 연이은 사업 실패와 방만 운영으로 자본잠식에 가까운 재정난을 겪고 있어 땅을 팔 수밖에 없는 사정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세종연구소는 2000년 이후 운영 적자가 누적되면서 재정난에 빠졌다. 2005년에는 골프연습장과 러시아 부동산 개발 등에 투자했다가 160억원 이상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이에 판교 건물과 땅을 매각해 현금을 챙긴 뒤 재정을 정비하고 서울시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세종연구소의 토지 매각 시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다. 재정난 초기인 2006~2007년 처음으로 성남 부지를 팔려고 했으나 당시 외교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절차가 무산됐다. 2009년에는 외교부 승인은 받았지만 성남시가 이곳을 개발행위 제한구역으로 묶으면서 매각이 불발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매각 시도를 이어 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제 2의 백현동’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일대 부지 용도를 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를 4단계 상향해 아파트 개발사업을 허용해 줬던 것과 비슷한 특혜 구조라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4년 차인 2021년, 문 정권에서 통일외교안보특보를 지냈던 문정인 전 이사장이 세종연구소 수장에 오른 뒤 대형 아울렛 기업과 90년에 달하는 초장기 임대계약을 추진하다가 논란이 벌어졌다. 문 전 이사장은 임대계약 이후 기업이 부지에 대형복합건물을 지으면, 매년 임대료를 112억원씩 받아 세종연구소의 경영난을 해결하겠다는 구상을 펼쳤다.
그런데 세종연구소가 아울렛 기업과 임대계약을 앞뒀던 2019년, 성남시에 부지 용도를 자연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나 올려달라고 요청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판론이 제기됐다. 은수미 전 성남시장 시절 성남시가 이 같은 세종연구소의 요청 사항을 도시기본계획에 포함해 승인 절차를 밟았는데, 정치권에서 ‘사업 추진 과정이 백현동과 유사하다’며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자 결국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결국 올해 2월 5일 성남 세종연구소 부지는 종상향 없이 자연녹지지역으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 부동산 업계에선 이 땅 입지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개발이 제한된 자연녹지지역이라 앞으로 부지 개발 효율성을 위해 종상향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각종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입찰에 나서려는 기업이나 투자자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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